최근 막을 내린 파리컬렉션에서 화제가 됐던 이슈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새로운 디자인 수장을 맞아들인 것이었다. 주인공은 대만계 미국인인 알렉산더 왕(30). 왕은 15년간 이 브랜드를 이끌어 왔던 니콜라 게스키에르(42)에 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했다.
패션전문가들은 불과 서른의 나이에 띠동갑 형님의 뒤를 이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그의 빛나는 ‘미모’를 꼽는다. 쇼를 평가하는 전 세계 패션담당 기자들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거나 여성적 취향을 가진 남성이고, 고급 디자이너 의류의 주요 고객도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디자이너 본인의 성(性)적 정체성이야 어찌됐든 간에 고객들은 ‘예쁜 남자’와 그들이 만든 옷에 더 열광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동양적 미녀형인 그의 미모 덕분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가 많다. 이들은 프랑스의 전 퍼스트레이디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나 미국의 미셸 오바마 여사가 세계적인 패션 신드롬을 빚을 수 있었던 배경에 큰 키와 미모 등 ‘우월한 유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캐서린 하킴이 쓴 매력 자본(원제 Honey Money·The Power of Erotic Capital)은 외모가 사회적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짚는다. 런던 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인 저자는 외모와 사교성, 패션스타일, 이성을 다루는 테크닉 등 성적 매력과 연계된 요소들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적 자본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 대선에선 키가 더 큰 후보가 승리했던 적이 많았고 배심원제로 진행되는 재판에서 미남들은 유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더 낮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한국노동경제학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같다면 키가 10cm 클수록 취업에서 차별 당할 개연성이 2%포인트씩 낮아졌다. 좋든 싫든 매력 자본은 이미 한국 사회도 접수해버리고 말았다.
국가적 차원으로 매력 자본의 힘을 확대해보면 다행히 한국엔 유리한 점이 많다. 한국인에게는 타고난 외모와 이를 가꿀 줄 아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화장품 수출로 ‘뷰티 한류’를 이루게 된 원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방한한 유세프 나비 랑콤인터내셔널 사장은 한국의 남성화장품 시장이 발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국 남성들이 잘생겨서…”라고 답했다. ‘한국형 미남’은 한류 덕에 ‘글로벌 미남’으로 통하게 됐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은 타고난 외모와 함께 이를 가꾸려는 학습의지가 높은 점을 한국 시장의 경쟁력으로 꼽는다.
한국인들의 ‘탐미주의’에는 성형공화국, 외모지상주의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가 많이 따라붙어 왔다. 그런데 그런 성향이 국가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사뭇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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