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63>멋진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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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람
―김승일 (1987∼)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었어. 짱깨가 철가방에서 너를 꺼냈지. 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고모가 자주 하는 얘기. 나는 그 얘기를 너무 좋아해서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나만 그렇게 태어났지? 이것은 오래된 바람.

내가 배달된 해에, 할아버지가 둘 다 죽었다. 집안에 큰 인물이 태어나면 초상이 난다지. 이것 역시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 나는 얼마나 유명해질까? 기대가 된다. 그러나

손금이 평범해서 나는 울었지. 그래도 손금이 평범하다고 우는 애는 나밖에 없을 거야. 있으면 어떡해? 조금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실컷 울었더니 손금이 변했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었다. 나는 평범함보다는 평평함이 좋아.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화를 냈다. 괜찮아요. 열차가 오려면 십 분 남았어. 나는 이목을 끄는 사람. 나중에 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기 싫었어요. 어쨌든

할아버지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혹독한 현실. 하지만 사명감은 갖지 않을래. 사명감이 없는 애는 나밖에 없을 테니까. 있으면 어떡해? 있으면 좋지. 짱깨가 내 앞을 지나갔다. 폭주족처럼. 이목을 끌며 멋있게.

어쩐지 시인이 놀리는 것 같아. 누구를 놀리는 걸까? 세상을? 그렇다면 괜찮아. 그런데 나, 독자님을? 그건 옳지 않아! 그렇다, 시인은 까부는도다. 철딱서니 없는 아이의 탈을 쓰고 까불까불 시를 이어가는 어법이 재미나다.

고모랑 할아버지들 얘기만 있고 엄마아빠는 그림자도 없으니 화자는 고아다. 고아는 만인의 아이. ‘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아이는 제가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는데 그 근거가 고아인 데다 태어난 해에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셨다는 것. 얼마나 특별한가! 아이는 거기 만족하지 않고, 제가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증표를 열심히 찾는다. 그런데 너무 평범해! 사람들이여, 나를 좀 봐 주세요! 아이는 외롭게 한심한 짓, 화를 돋우는 짓들을 저지른다.

나의 소년아! 누구든 몸 마음 머리를, 아니면 그중 하나를 지루하고 힘든 노력으로 열심히 닦으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이모님 말씀)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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