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아스텍 타이거, 멕시코

  • 동아일보

미국 와이어드지(誌) 편집장 출신인 크리스 앤더슨이 3년 전 샌디에이고에 ‘3D 로보틱스’라는 벤처기업을 차렸다. 사업은 재미있는데 문제는 싼 인건비와 괜찮은 기술로 무장한 중국의 도전. 중국에 공장을 둔 아웃소싱으로는 벅찼다. 해결책은 멕시코였다. 샌디에이고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멕시코의 티후아나에 공장을 세워 퀵소싱(quicksourcing)을 시작했다. 몇 달씩 걸리던 주문-생산-유통이 놀랍게 단축됐다. “멕시코가 뉴 차이나(New China)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터뜨린 앤더슨의 감탄이다.

▷앤더슨 같은 미국인 덕에 멕시코가 최근 해외투자자들의 새로운 애인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9월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브라질보다 5배나 많다. 작년 성장률은 4%. “믿을 수 없는 성장 스토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현 집권당인 제도혁명당(PRI)의 일당독재 기간(1929∼2000년) 중 ‘멕시코 질병’(경제발전 기회를 정쟁과 민중봉기 등 정치 불안으로 놓치는 현상)이라는 용어가 나왔던 멕시코였다. 포퓰리즘 때문에 5차례의 외환위기가 대선 시기와 거의 일치했던 나라, 지난 몇 년간 마약과 폭력으로 ‘실패국가’ 직전까지 갔던 나라로선 엄청난 변화다. 대체 멕시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해답은 작년 12월 1일 취임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말한다. 그는 작년 7월 ‘당선인’ 신분 때부터 변화의 선두에 섰다. “최고의 성장률을 올리는 신흥국가가 되겠다”고 천명하고 교육개혁과 경쟁 도입을 해법으로 내놨다. 취임식 당일 재벌이 독점해온 텔레콤과 국영석유기업 페멕스(PEMEX)를 시장에 개방하고, 교육 및 세제를 개혁하는 등 95개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그러고는 24시간도 안 돼 주요 정당 대표들을 모아 ‘멕시코를 위한 협약’에 서명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과감하게 전임 우파 정부의 재정장관을 외교장관으로, 전 좌파 야당 대표를 사회개발장관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한 건 물론이다. 멕시코가 ‘아스텍 타이거’로 거듭나 기지개를 켠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시아의 타이거’로 불린 적이 있다. 지난 정부 시절 일부 세력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잘못 맺으면 멕시코처럼 된다”며 멕시코의 경제난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탓인 듯 몰아붙였다. 그러나 NAFTA 우산 아래 20년간 다져온 수출 확대와 산업구조 고도화가 비로소 ‘좋은 정치’를 만나 오늘의 아스텍 타이거를 낳았다고 봐야 한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페멕스 본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니 안타깝다. 불길을 딛고 진짜 타이거 같은 멕시코로 부활하길 기대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멕시코#아스텍 타이거#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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