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복무 연장을 바라는 ‘창업 군대’로 만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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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이 직설적이고 거칠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거친 발언이 종종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군대를 ‘썩으러 가는 곳’이라고 말한 것이 좋은 예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신성한 국방의무’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한다. 그러나 그들의 병역 면제율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때 우리나라 최고의 안보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긴급 소집됐다. 8명으로 구성된 NSC 위원 중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무려 4명이 병역 미필자였다. NSC마저 이러니 썩으러 간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증명하듯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에 있다. 북한의 도발은 병역의무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NSC 위원 구성이 보여주듯 군대를 안 가거나 짧게 다녀와야 출세에 유리하다. 입영 대상자와 그 부모들이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줄 알면서도 복무 단축 공약을 반기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징병제 국가 가운데 군대가 ‘썩으러 가는 곳’이 아닌 나라가 있을까. 있다. 강원도 정도 넓이의 국토 면적에 인구 800만 명이 채 안 되는 이스라엘이 그런 나라다. 최근 5년간 이스라엘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 중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스라엘 언론인과 미국 투자 분석가가 공저한 ‘창업 국가(Start-Up Nation)’는 이스라엘 경제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이스라엘 경제 성장의 견인차는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하이테크 벤처기업들이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이스라엘의 벤처기업 수는 유럽 국가 전체의 벤처기업 수보다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국군에 해당하는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이들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육성센터)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고교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을 IDF에서 의무 복무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IDF 부대 배치를 위해 고교생들은 입대 1년 전부터 신체검사, 적성, 능력, 심리 테스트 등을 받는다. 이렇게 구성된 IDF 부대 하나하나가 벤처 인큐베이터로 작동한다.

‘창업 군대’인 IDF는 고강도 군사훈련과 더불어 창의력을 일깨워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활발한 토론 문화를 장려한다. IDF는 계급을 따지지 않고 무엇을 잘하느냐로 평가받는 ‘수평적 군대’다. 명령을 내리는 장군과 영관급 장교의 수를 의도적으로 대폭 감축한 IDF는 사병이 부대 운영의 70% 정도를 책임진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복무 기간이 긴 특수부대일수록 인기가 높다. 복무 기간이 길수록 벤처 인큐베이터가 하이테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탈피오트’는 이스라엘 고교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IDF 부대다.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의 탈피오트는 교육 기간을 포함해 복무 기간이 무려 9년이나 된다. 탈피오트 복무자는 첨단 벤처업계에서 하버드대 졸업생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니 인기가 이해된다.

최근 우리 정부는 한국형 탈피오트를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탈피오트는 IDF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제도다. 현재 우리 군의 실상은 IDF와는 거리가 멀다. 장군과 영관급 장교가 너무 많다 보니 창의적 교육이나 활발한 토론은 없고 명령과 통제만 남은 ‘수직적 군대’다. 내무반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병사들은 일과 시간 이후에도 수시로 작업에 동원된다. 복무 단축을 바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육군 기준 현재 21개월인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닷새 전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8개월 단축안을 들고 나와 인기를 끌자 맞불 차원에서 공약집에도 없는 걸 약속했던 것 같다.

우리의 안보 현실에서 복무 단축은 병력 부족뿐만 아니라 무기 운용 숙련도의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국방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숙련된 병력을 유지하려면 최소 22개월 복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은 이를 위해 2009년 8월 행정부가 복무 기간을 22개월 이하로 단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부결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줄어들던 복무 기간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여파로 21개월에서 동결된 채 지금에 이르렀다.

박 당선인이 진정으로 안보를 염려한다면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대신 우리 군을 IDF처럼 벤처 인큐베이터로 변모시켜야 한다. 그래서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복무 연장을 요구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창업 군대’는 박 당선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창조경제’의 엔진이 될 것이다. 그가 ‘창업 국가’를 정독했다고 하니 거는 기대가 크다.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군대#복무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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