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9>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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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아요
―성기완(1967∼ )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다던
당신이떠난그곳이어딘지
알수없어

매우멀어바다같아요
당신이남겨놓으신흔적들
파도에씻긴조가비같은것들
함께바다에여행갔을때당신이
무릎접고고개숙이고줍던
그시간이

매우멀어바다같아요

당신이나를버린이유
알수없어걷고또걷던새벽에얻은
몽유의버릇
주머니에가득한물음표
아이가쏟아놓은퍼즐조각처럼
그이유가망망(茫茫)해서대해(大海)같아요

언젠가부터긴긴잠을자고있어요
당신이어디사는지알지도못하는
그냥내가한참미워밤바다같아요
그리고너무멀어
오늘이

망망(茫茫)큰바다같아요


성기완은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다. 즉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리드미컬하다. 이 시에서도 아련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아름답게 노래했다. 실연은 쓰디쓴 것이나 실연의 노래는 달콤한 것.

어느 날 갑자기 연인이 종적을 감춘다. 왜? 도대체 왜? ‘당신이나를버린이유/알수없어’.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언젠가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매우멀어바다같다던’. 그랬나? 그랬어! 화자는 그녀의 말을 되뇌며 추억과 회한을 곱씹는다. 애달프구나, 사나이 순정. 세상의 연인들이여, 떠날 때는 말이나 하고 떠나시라. 문자라도 보내시라! 남은 사람 가슴 터지게 할 셈이 아니라면.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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