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진영]이익의 사유화, 부채의 국유화

  • 동아일보

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8일과 24일에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출신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과 김석동 위원장 사이에 벌어진 설전이었다. 김 의원은 “하우스푸어 문제의 1차적인 책임은 대출받은 사람에게 있다”는 김 위원장의 답변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그게 주택담보대출로 고통 받는 서민들에게 금융당국 책임자가 할 이야기냐”며 “인터넷 사이트에는 (그 말 때문에) 분노가 폭발한다”고 김 위원장을 공박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답을 해야 더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맞섰다.

주택담보대출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집을 사도록 부추긴 은행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었다. 가계 부채와 관련해서는 안철수 후보도 김 의원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와 금융권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여기서 한발 더 왼쪽으로 갔다. 박 후보는 ‘집 걱정 없는 세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하우스푸어 주택 지분의 일부를 공공기관에 팔아 대출금을 갚도록 하는 지분매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개인이 진 빚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빚을 줄여 주겠다는 공약은 유권자들한테는 솔깃한 얘기다. 그래서 역대 선거 때마다 등장한 단골 공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핵심 공약으로 농가부채 탕감을 내놓은 이후 1992년과 1997년 선거 때도 공약에 포함시켰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선거 운동 중에 “사재를 털어서 농촌부채를 탕감하겠다”고 공언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 모두 카드 빚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공약을 쏟아 냈다. 시간이 흐르고 후보가 바뀌면서 농가부채가 카드빚으로, 다시 가계부채로 바뀐 셈이다.

부채 탕감 공약은 기원전 로마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는 루시우스 카탈리나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기원전 64년 로마에서 시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집정관에 선출되기 위해 모든 시민의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선거를 앞두고 급한 마음에 내놓은 부채 탕감책은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했다. 정주영 후보의 공약은 선거 기간 도중 용도폐기 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재를 털어서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해당된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DJ는 집권 후 부채 탕감이 자본주의 질서에 맞지 않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약속을 뒤집었다가 농민들의 격렬한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 투쟁을 초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선심성 공약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빚을 줄여 준다면 채무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은 없을 것이다. 집을 사서 가격이 오르면 이익은 내 몫이 되고 가격이 떨어져서 빚이 생기면 그중 일부를 정부가 책임져 주며, 이익은 사유화하고 부채는 국유화하겠다는 것이니 투자자와 채무자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지금 나선 후보 중에는 사재를 털어서 비용을 댈 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도 없다.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국가 이익#국가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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