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거룩한 식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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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식사
―황지우(1952∼ )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사람도 식물처럼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루할 일도, 눈물겨울 일도 없으련만. 하지만 그러면 화초 정도밖에 안 되는 아이큐로 흙과 물과 햇빛 외에 세상의 다른 맛은 하나도 모르고 한 생을 보내겠지.

‘어린 것’과 ‘늙은이’. 생활력 없는 이들 입에도 한세상 떠 넣어 주는 게 우리 인류의 자존심일 테다.

황지우는 기분 좋으면 말을 쏟아내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노래고 시라고, 이 시가 실린 시집 발문에 적혀 있다. 이런 말들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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