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승진 앞둔 여교사는 ‘교장의 기쁨조’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승진을 앞둔 여교사는 교장의 기쁨조’라는 무기명 투서가 교육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여교사가 인천시교육청 고위 간부에게 전달한 편지에는 “근무성적을 매기는 일부 관리자가 여교사들에게 술자리를 요구하고 노래방에서 껴안거나 무릎에 손 올리기 같은 성추행을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 관리자란 교장 교감을 가리킨다. 교장 교감이 근무평가를 무기로 승진을 앞둔 여교사를 성추행한다면 업무상 위력(威力)에 의한 성추행에 해당한다.

투서 내용은 구체적이다. 일부 관리자 중에는 승진을 앞둔 여교사에게 자동차로 출퇴근을 시켜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교장들은 숙박을 해야 하는 출장에 동행할 것을 여교사에게 종용한다는 것이다. 요구를 거절하면 “이러니 근무평정을 못 받았지”라며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암시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소 과장이 있을지 몰라도 승진을 둘러싼 분위기를 보여 주기에 충분한 자료다.

군대 영관급 장교와 하급 여장교, 남자 선배 전공의와 후배 여자 전공의, 남자 교수와 여제자 사이에 성희롱과 성추행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교단까지 파고든 성희롱은 여성 인권의 심각한 위기 징후다. 현행법상 학교도 성희롱 예방 교육 대상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집계 결과 ‘예방 교육 부진 기관’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학교가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한다는 얘기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은 피해자의 고통이 엄청난데도 가해자가 승진 배치 등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저항하기 어렵다. 해당 여교사가 익명으로 투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권력과 직위를 이용한 성폭력의 특징을 보여 준다. 인천시교육청은 성추행 당사자를 가려내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인사평가 권한을 이용해 여교사를 괴롭히는 행태가 얼마나 많은지 실태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
#사설#교육#여교사#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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