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Hot 피플]홍콩 4대 행정장관 렁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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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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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형 삶엔 호감… 親中노선엔 반발

《 7월 1일 홍콩의 제4대 행정장관에 취임한 렁춘잉(梁振英·58)의 삶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성실하고 소박한 그의 삶에 많은 홍콩시민이 호감을 보이지만 그가 지나치게 친중(親中)노선을 보이고 있다며 반발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의 앞날은 올해 홍콩 반환 15주년을 맞은 홍콩시민들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
홍콩 주권 반환 15주년 일과 겹쳤던 지난달 1일 취임식에서 렁춘잉 장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CNTV
홍콩 주권 반환 15주년 일과 겹쳤던 지난달 1일 취임식에서 렁춘잉 장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CNTV
렁 장관은 아버지가 경찰이었지만 워낙 가난해 어린 시절 경찰 숙소에서 보낸 적이 있다. 현재 살고 있는 관저가 바로 아버지가 예전에 보초를 섰던 곳이다.

그는 열심히 하면 뭐든 성취할 수 있다는 ‘홍콩 드림’의 전형이다. 홍콩이공대를 졸업하고 전문 토지측량사로 일하다 1974년 영국 웨스트잉글랜드대로 유학 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당시 중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귀국 후 학교 대신 부동산컨설팅 사업으로 성공한 뒤 1996년 홍콩 임시 입법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디딘다. 1999년부터 행정회의 의장을 맡아오다 행정장관 출마를 위해 지난해 사퇴했다.

렁 장관은 홍콩에서 가장 부자동네인 빅토리아피크에 살면서도 공사판 노동자들이 즐기는 4달러짜리 점심을 사먹고 대학교 때 쓰던 서류가방을 여전히 사용하며 지하철로 출근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형적 자수성가형인 그의 삶에 대해 대다수 홍콩인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의 정치적 앞날은 불안하다.

홍콩 반환 15주년 일과 겹쳤던 7월 1일 취임식에서 렁 장관은 “안정 속의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이날 홍콩 전역은 매년 홍콩 반환일에 일어났던 시위 중 가장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몸살을 앓았다.

시위대는 렁 장관을 향해 “공산당과 끝까지 싸워라” “(우리는) 톈안먼 사태를 잊지 않겠다”라고 외쳤다. 또 6월 홍콩 언론이 보도한 ‘렁 당선자 집에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유리구조물이 있다’는 것과 관련해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시위는 과격한 양상을 띠어 렁 장관의 초상화가 불태워지기도 했으며 축하사절로 참석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는 도중에도 “일당독재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다 끌려 나가는 시위자가 나오기도 했다.

홍콩의 행정수반은 ‘행정장관(Chief Executive)’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mayor)이나 장관(minister)과는 역할이 다르다. 정부 재정을 관리하고 투자자들의 수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민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비슷하다.

홍콩은 여전히 금융계의 ‘파워 하우스(power house)’이며 외국인 중국 투자와 중국 무역의 15%가 홍콩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 중에는 렁 장관이 너무 친중파여서 자유로운 도시인 홍콩에 적합한 인물인지 의심된다고 말한다.

이런 불만의 배경에는 점증하는 빈부격차에 있다. 홍콩 지식인들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일부 부유층의 경제력만 커지고 대다수 서민의 삶의 질은 추락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올해 홍콩이 공식적으로 집계한 빈부격차지수는 지난 30년 가운데 최악이었다. 서민들은 날로 치솟는 물가, 정경유착,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자들이 렁 장관 편도 아니다. 부자들은 렁 장관의 친중 행보를 사회주의적 행태라고 비난하면서 렁 장관이 홍콩 고유의 자본주의 기풍을 흔드는 ‘늑대’라고 혹평한다. 심지어 렁 장관이 중국 공산당 당원이라며 중국 지도부에 영혼을 파는 악의적인 파우스트식 거래에 가담했다는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렁 장관이 3월 선거인단 1200명의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됐는데 여기에는 700만 홍콩 시민의 의견이 모두 반영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선거인단 대다수가 친중 성향이어서 중국의 의중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렁 장관 후임 행정장관 선출(2017년)에는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직접 선출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렁 장관이 풀어야 할 난제는 수두룩하다. 무엇보다도 홍콩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홍콩은 금융과 무역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정부 수입의 5분의 1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 부동산 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

홍콩의 일반 기업과 개인은 부동산 투자를 자산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체 시민의 50%는 무주택자다. 이들은 건설업계와 공무원이 서로 짜고 부동산 가격을 높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본토인들까지 홍콩에 와서 집을 사고 있어 주택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렁 장관이 최근 850억 달러를 투입해 무주택자를 위해 공공주택건설, 민간개발허가 확대를 약속한 것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렁 장관에게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홍콩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이중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이는 홍콩 시민들이 중국에 대해 갖는 이중적 감정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중국의 힘을 자랑스러워하며 각종 경제적 혜택을 즐기는 한편으로 중국이 홍콩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힘을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자유를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는 홍콩인들의 이중적 바람을 렁 장관이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갈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이수진 통역·번역가

※ 참조 외신=뉴욕타임스, 타임 잡지, 이코노미스트, 명주 채널(홍콩 방송),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홍콩#행정장관#렁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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