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태권영웅’ 욕망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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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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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한때 ‘태권영웅’이었던 문대성(36)의 현 직함은 2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자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사하갑·무소속). 그는 전직 교수(동아대 태권도학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4·11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박사 학위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을 떠났고 교수직마저 내놓았다.

적어도 지난해까지 문대성은 순수해 보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교수가 됐고 IOC에 입성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런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신분 상승을 해왔음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쌓아온 좋은 이미지는 흐려졌다. 태권도 담당으로 5년간 그를 보고 느꼈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안타까웠다.

문대성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4월 쿠웨이트에서였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유치 홍보대사 자격으로 현정화(대한탁구협회 전무), 최윤희(수영) 등과 함께 인천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곤 경쟁지역인 인도 뉴델리를 제치고 아시아경기를 유치하는 감동을 함께했다.

그해 6월 문대성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 2연패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태권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다시 도복을 입었다”고 했다. 당시 태권도계에서 불거진 승부 조작과 관련해선 “비리 당사자는 태권도계에서 퇴출시키는 등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문대성은 2008년 1월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베이징 올림픽 메달보다 IOC 선수위원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거였다. 명분은 있었다. 이건희 IOC 위원(삼성전자 회장) 한 명뿐인 한국으로선 스포츠 외교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문대성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하루 15시간씩 선수촌에 머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 결과 세계 스포츠 스타 29명 가운데 1위로 IOC 선수위원이 됐다. IOC 위원과 같은 국빈 대접을 받으며 스포츠 외교 현장을 누볐다. 지난해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는 평창의 2018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대성이 20여 년간 몸담았던 태권도계의 반응은 그리 곱지 않았다. 일부에선 “문대성은 태권도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선후배마저 나 몰라라 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문대성이 잘나가는 걸 질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대성은 올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표절한 게 드러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났다. 태권도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던 그 스스로가 비리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IOC 위원직마저 위태로워졌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임기가 남아있지만 IOC 윤리위원회가 그의 표절에 대한 징계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페어플레이를 중시하는 스포츠인이 남의 논문을 베껴 교수가 됐다는 건 큰 오점일 수밖에 없다.

문대성은 운동선수부터 지도자, 스포츠 외교인에 이어 정치인까지 스펙트럼을 넓혔다. 하지만 과한 욕심은 신분 상승을 위한 뒷거래로 변질됐다. 그를 이제 ‘태권영웅’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존 드라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욕망은 사람을 성공의 길로 가게 하기도, 실패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문대성의 추락을 보면서 지나친 욕망은 화를 부르고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문대성#논문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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