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시내를 걷다 보면 이 나라가 인구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임을 절감할 때가 많다.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보다 점잖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더 많이 눈에 띈다. 골프장에서 7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3, 4개씩 팀을 짜 단체경기를 즐기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모든 물건을 균일가로 파는 100엔 숍은 20, 30대 청년으로 붐비지만 백화점이나 고급 브랜드숍의 주요 고객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이 같은 광경은 더 자주 눈에 띌 것 같다.
단카이 세대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7∼1949년에 태어난 세대다. 3년 연속 연간 출생자가 250만 명을 넘어 일본에서는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세대다.
단카이 세대의 인생 사이클은 패전 이후 일본이 겪어온 부흥과 성장, 버블 붕괴라는 성쇠사(史)와 맞아떨어진다. 이들은 20대인 1960년대에 양질의 막대한 인력을 제공해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대학에 진학한 청년 단카이들은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을 휩쓴 반(反)체제 운동인 ‘뉴 레프트’의 기수로 나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40, 50대에는 기업이나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 일본 최고 호황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때 20년 장기불황을 잉태하기도 했다.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다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화려한 조명이 아닌 지탄의 대상이다. 넉넉한 경제적 여유를 가졌으면서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이들 세대는 ‘디플레와 경제적 세대격차의 원흉’이라고 비난받는다.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의 가구당 평균 저축은 3억 원(2300만 엔)이 넘는 반면 가구주가 30대인 가계는 부채(800만 엔)가 저축(640만 엔)보다 많은 적자 인생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올해부터 대거 배출되는 단카이 은퇴자들은 자신들이 낸 돈보다 더 많은 몫을 현역 세대들이 내는 세금으로 받아간다. 이들을 향해 “고도성장의 배부른 잔치를 즐긴 고령 세대가 음식 구경조차 못한 우리에게 설거지마저 시킨다”는 젊은층들의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잘나가던 시대를 주인공으로만 살아온 탓인지 단카이 세대의 자부심 과잉도 문제다. 예를 들어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봉사단체의 엉성한 조직력을 지적하는가 하면 체계적이지 못한 활동을 질타하면서 부조화를 낳고 있다. 오랫동안 조직의 장(長)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상사(上司)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섣불리 나서 가르치려고만 든다는 것이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를 보노라면 한국의 386세대가 겹쳐 떠오른다. 단카이 세대가 일본의 경제적 승리를 이룬 세대라면 한국의 386은 1980년대 치열한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라는 정치적 승리를 이끈 세대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막강한 영향력도 비슷하다.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보낸 한국의 386은 이제 쉰 살을 갓 넘었거나 쉰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허리가 됐다. 하지만 386의 사고는 여전히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는 과잉 책임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민주화를 쟁취한 승리감에 도취된 탓인지 자신이 1970, 80년대 고도성장의 수혜자라는 건 잊은 채 과거를 부정하려고만 한다. 중장년층에 접어든 한국의 386이 단카이 세대와 같은 사회적 지탄을 면하려면 이제는 포용력 있는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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