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미국에서 만난 두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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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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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에 지구촌이 촉각을 곤두세운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는 두 명의 탈북자가 주인공인 두 가지 행사가 열렸다. 우선 10일 워싱턴 싱크탱크인 피터슨경제연구소에서 미 북한인권위원회(HRNK) 주최로 열린 북한 정치범수용소 세미나가 그중 하나. 300여 명이 몰려 강당을 빼곡하게 채우고 앉을 자리가 없어 뒤에 서서 듣는 사람도 많았다.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신동혁 씨(31)가 세미나 연사로 나왔다. 지난달 29일 출간한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14)’의 저자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도 동석했다. 책 주인공인 탈북자 신 씨는 모범수였던 부모의 ‘표창 결혼’으로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용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면서 변변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북한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과 슬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증언했다. 2005년 탈북한 신 씨는 4년 전 한국에서 북한 수용소 실태를 고발하는 책을 직접 펴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실패작’으로 끝났다고 했다. 국내에서 기껏 몇백 권 팔린 게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신 씨는 “그동안 아무리 말하고 얘기해도 북한 수용소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북한은 더 승승장구했고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든 씨가 펴낸 그의 책은 지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신 씨는 “내가 유명해졌다고 얘기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연예인이라면 행복하겠지만 나에겐 피눈물 나는 스토리”라며 “국제사회가 큰 소리를 내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 씨 행사 이틀 뒤인 12일엔 존스홉킨스대에서 탈북 화가 송벽 씨(43)가 학생들을 상대로 북한을 탈출한 자신의 삶과 가족사를 얘기했다. 그는 올 2월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전시회를 연 데 이어 워싱턴에서도 개인전을 열기 위해 이번에 미국을 다시 찾았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선전선동화가로 일하다 배가 고파 탈북했다는 그는 김정일에게 북한의 실상을 더는 숨기지 말고 북한을 개방하라는 메시지를 그림에 담았다. 메릴린 먼로가 스커트 자락을 붙잡는 유명한 장면에 먼로 얼굴 대신 김정일 얼굴을 넣은 그림은 송 씨 작품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송 씨는 “옥수수밥이나 죽이라도 세 끼를 제대로 줬으면 북한 사람들이 과연 중국으로 탈출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송 씨의 소망 역시 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4년 동안 탈북자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달라고 피눈물 나는 투쟁을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탈북자 얘기만 꺼내면 내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선 이제 기대할 것이 없다. 유엔에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교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가 실패로 끝난 14일자 사설에서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집착하면서 인권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고 한국에선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좌파 우파 정치인들의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사각지대였음을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에선 탈북자 인권 문제가 새삼 재조명받고 있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관심이 시들해질 조짐을 보여 안타깝다. 신 씨와 송 씨가 증언한 북한 수용소의 비참한 실태와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이들의 탈북 스토리가 고통 받는 수많은 탈북자에게 작은 힘이라도 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되길 기원한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탈북자#북한#장거리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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