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41>‘진성 이씨의 정원’ 가창재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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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조선의 살림집들은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내부공간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재실은 대청과 누마루를 중심으로 제사의 기능상 공간의 위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내부 공간의 변화가 다양하고 그만큼 실험적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제사를 지내기 위한 단순한 기능에서 문중의 젊은이들을 위한 강당이나 휴식기능들이 더해지기 시작하면서 원림(園林)의 성격을 띠는 곳도 생기게 된다.

가창재사(可倉齋舍)도 그런 추정을 하게 하는 곳이다. 가창재사가 위치한 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 절골엔 작산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조성돼 있다. 농로를 따라 마을에 접근해도 골짜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송림 때문에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이다. 절골에서 터 앞을 흐르는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이 보이지 않도록 수구막이로 조성한 소나무숲을 지나면 양지 바른 산기슭이 나오는데 언덕의 여기저기에 큰 바위와 고목이 흩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로 고색창연한 집 다섯 채가 자리한다. 순서대로 관리사인 주사가 있고 강학공간인 강당, 작산정사(鵲山精舍)와 사당이 있고, 그 옆으로 가창재사가 있다. 사당은 진성 이씨의 안동 입향조인 송안군 이자수를 모시고 있고 재사는 그의 손자인 이정의 묘제를 위해 지었다. 중수기에 보면 가창재사는 1480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하다가 누각을 새로 얹은 것은 1715년에 와서다.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아마 철종 때인 1862년쯤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장장 200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다.

가창재사는 사당과 더불어 절골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데 재사 아래쪽으로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집을 더욱 웅장하게 보이게 한다. 바위 밑으로는 연못이 있고 길 아래 왼편에도 연못들이 있어 충분히 원림이 조성될 만한 자리다. 마을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 독립성이 보장되고, 주변의 자연석을 이용해 영역의 구분을 이루며, 후손들을 위한 강학공간까지 마련돼 있으니 한눈에도 진성 이씨 가문이 이곳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파악된다. 단순히 묘제를 위한 장소가 아닌 가문을 위한 정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조선사회의 씨족 혈연공동체가 점점 강화돼 갔다는 의미인 동시에 왕조의 힘이 쇠락해져 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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