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마무리하고 총선 경쟁에 들어갔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공천과정에서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세 불리기, 20대 대학생을 공천하는 깜짝쇼, 기성 정치인 물갈이는 있었지만 정작 공천개혁의 핵심인 공천제도 개혁은 없었다. 양당이 모두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어떤 위임도 받지 않은 소위 ‘전문가’가 주축이 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밀실공천’을 했다.
공심위의 밀실공천은 투명하지도 않았고 지지자들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았다. 양대 정당이 당명까지 바꾸면서 공언했던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후보가 선정된 지역구는 새누리당의 47개 선거구와 민주통합당의 76개 선거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참여경선이 말잔치로 끝나자 유권자들의 경선 참여 열기도 시들해졌다.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에 80만 명이 몰려 ‘대박’을 터뜨렸던 국민들이 총선임에도 103만 명만 참가 신청을 했다. 국민참여경선에 국민은 없었다.
대의 민주주의가 정당의 후보 선출 과정의 민주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면, 공천권은 당연히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 아테네에서도 시민들이 ‘조개투표(ostracism)’를 통해 대표 자격이 없는 정치인을 추방하는 네거티브 경선을 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조개투표를 통해 극단적으로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 지나치게 인기가 있거나 힘이 세고 탐욕스러운 정치가, 너무 가문이 좋은 특권층 출신, 그리고 모든 시민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선동가들을 10년간 국외로 추방함으로써 건전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중산층을 다수로 만들어 극단주의 정치와 소수 엘리트와 선동 정치인들의 담합정치와 음모정치를 배격하고 타협, 관용, 절제를 선호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했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4권 11장). 불투명한 밀실공천 여론 반영못해
오늘날 후보 경선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국민들은 총선에서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뿐만 아니라 후보 경선에도 참여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당의 후보까지 선출한다. 미국도 19세기 말까지는 정당 간부들과 지역 유지들이 담배 연기 자욱한 밀실(caucus)에서 후보를 결정했으나, 20세기 초 ‘진보정치의 시대’에 경선(primary)을 도입했다. 초기에는 등록된 당원과 정당 지지자만 투표할 수 있는 ‘폐쇄형 경선’이 유지됐으나, 점차 당 소속에 관계없이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선’이 도입됐고, 1960년대 정치 개혁으로 완전 개방형이 자리 잡았다.
국민경선의 장점은 주권자인 국민이 두 차례의 검증을 통해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민은 일차적으로는 경선을 통해 후보의 리더십, 도덕성, 대표성, 책임성, 능력, 그리고 선출 가능성을 검증하고, 총선에서 이미 경선에서 한 차례 걸러진 후보를 다시 검증해 사익보다는 공익에 충실하고 물처럼 구석구석 빠진 데 없이 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2002년 대선에서 혼합형 경선인 국민참여경선을 실시했고, 주류 기득 정치인이 아닌 비주류 정치인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할 수 있었다. 2004년 총선에서도 여당 주도하에 경선이 시도됐으나 제도의 미비와 관리 미숙으로 많은 지역 토호들이 참신한 신진 정치인들을 경선으로 밀어내고 후보로 선출됐다. 그래서 2008년 총선에서는 다시 전문가그룹과 당 지도부가 공심위를 구성해 후보를 공천하는 정당 개혁의 퇴행이 일어났고 그 퇴행이 2012년에도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는 소셜미디어 혁명으로 혁신적인 소통수단을 보유한 젊은 유권자들이 당에서 불러주면 언제든지 경선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는데, 정작 정치권에서는 경선 과정의 문제점, 경선으로 뽑힌 후보의 낮은 당선 가능성 등을 들먹거리면서 지역구의 대부분을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으로 채우는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이고 반(反)대의주의적인 시대착오적 공천을 했다. 경선制 잘 키워야 민주주의 발전
공심위가 반대의주의적인 이유는 그들이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어떤 위임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경우 18대에 이어 19대 총선에서도 법조계 출신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정치가 국민의 대표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선출되지 않은 강력한 집단에 좌지우지되는 현상 중 하나인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를 강화했다. 법조계 출신의 추천으로 후보가 된 정치인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 사법부, 검찰, 법조계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 중에서 최선의 정부 형태”라고 했듯 민주주의도 결함이 있고 가장 민주적인 후보 선출 제도인 국민경선제도에도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경선제도를 포기하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경선제도를 소중하게 키워야 우리 정당과 민주주의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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