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선정하는 여야의 공천은 불공정 경연장 같았던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서울 중랑갑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친박(친박근혜)계 김정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4위에 그쳤다. 현역인 유정현 의원은 김 의원보다 여론조사에서 10배 정도 앞섰지만 쓴잔을 마셨다. 민주통합당 전남 고흥-보성 국민경선에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린 장성민 후보가 5위에 머문 현역 의원 보좌관 출신에게 밀려났다. 여야가 국민 눈높이에 맞춘 ‘쇄신 공천’을 공언했으나 ‘구태 공천’으로 되돌아간 사례 중 극히 일부다.
새누리당의 ‘시스템 공천’은 여론조사를 통한 현역 의원 하위 25% 컷오프(탈락)로 요약된다. 헌법처럼 쉽게 바꾸기 힘든 원칙이라고 큰소리쳤지만 넝마조각이 됐다. 전체 지역구 의원 144명 중 조사 대상 23명은 애당초 원칙 적용에서 제외됐다. 컷오프에 걸린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을 정리한 자리에는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 공천을 받았다. 당내에선 ‘박근혜당’이 된 마당에 ‘친박계 공천’은 당연하다는 냉소적 반응도 있지만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사당(私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정체성 공천’은 온건중도 국익우선론자들을 대거 탈락시키는 데 적용됐다. 그 대신 ‘친노(친노무현) 사람, 이화여대(한명숙 대표 출신교) 인맥, 과거 386 운동권 출신 486’이 다수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은 이명박(MB) 정부의 인사를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로 낙인찍어 공격했는데, 정작 자신들은 더 심한 ‘패거리 공천’을 자행했다. 한 대표가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운 ‘모바일 국민경선’은 전·현직 의원과 지역 토착세력의 ‘차떼기 동원’ 경선으로 변질했다.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은 MB 지지율 하락의 혜택을 보고 있다. 공천에 불이익을 받는 친이계의 반발은 반MB 정서에 묻혀 주춤한다. 민주당도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 공천 후유증을 야권연대와 MB 심판론으로 덮으려 한다.
제1, 2당의 공천 개혁이 합격점에 미달하고,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개탄스럽지만 4000만 유권자는 22, 23일 등록한 총선 후보들 중에서 선택 또는 심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次善), 이마저도 아니면 차악(次惡)이라도 제대로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