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크리스토퍼 힐]“No”라고 말할땐 책임이 따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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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前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크리스토퍼 힐 前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40년 전인 1972년 2월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다. 방문 마지막 날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를 다짐하는 ‘상하이 코뮈니케’에 합의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고 자평한 중국 방문은 실제로 강대국들의 힘의 재편을 이끌었고, 중국과 옛 소련의 관계도 냉각시켰다. 냉전시대 종식의 첫출발이었던 셈이었다.

닉슨 방중 40주년을 맞은 지금 미국과 중국 관계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그런데 올 2월 중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에 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국은 이로써 미국과의 관계에 숙제를 남겼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해 왔다. 거부권 행사도 러시아의 중동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결정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의혹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요즘 중국에서는 ‘전략적 불신’이라는 말이 많다.

한 중국인 학자는 상하이에서 만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번 뱀에게 물리면 밧줄을 보고도 기겁한다.” 중국이 지난해 리비아 군사제재 결의안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으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결국 중국은 아랍연맹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결의안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거부권 행사 직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외교장관을 파견했지만 중국은 입장이 다르다. 단지 시리아 유혈사태를 내정문제로 보지 않는 국제사회와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런 외교적 결정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결의안의 부결은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결의 부족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1972년 미국이 약화시켰던 중국과 러시아간의 협력체계를 강화했다. 시리아 문제만큼이나 미중 관계 역시 시급성을 요하게 됐다.

중국의 거부권 행사는 진공상태에서 일어난 게 아니다. 중동 분쟁에서 발을 빼고 동아시아에 외교력을 집중하겠다는 미국의 최근 결정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개입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40여 년 전 중국과 옛 소련의 국경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인들은 소련이 중국을 봉쇄할까 우려했다. 중국 블로거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번에는 미국이 중국을 봉쇄할지도 모른다는 ‘업데이트된 우려’라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인식은 명백히 상호 이익이 되는 이슈에도 적용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배신을 선언하기를 꺼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막기 위한 전략을 구축해야 함에도 중국의 불신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국수주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1세기 동안 외세의 간섭을 받았던 ‘세기의 수치(Century of Shame)’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상하이 코뮈니케 이후 중국은 역사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중국은 세계와의 협력을 택했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이 공원 산책 정도로 여겨질 만한 여정이다. 세계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국과 어떻게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출 것인가가 관건이다. 미국 역시 중국와의 관계에서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어느 중국 관료의 말처럼 “실패하기엔 너무 중대하다”는 점이다. 시리아 인구는 중국에 비하면 지극히 적다. 고통받는 시리아 국민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올 2월의 파국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前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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