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일성 왕조 3代 ‘김정은 시대’ 어떻게 할 것인가

  • 동아일보

북한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김정은 시대’ 개막을 사실상 공식 선언했다. 김정일 사망 5일 만이다. 김정은은 북한 권력서열 1위 자리인 노동당총비서나 국방위원장에 미처 앉을 새도 없었지만 김씨 왕조의 적통(嫡統)이라는 ‘백두산 뿌리’ 하나로 김정일이 쥐고 있던 최고 권력을 이어받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어제 1면 전면(全面) 사설에서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두리(둘레의 북한말)에 단결하고 그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아들이자”고 했다. 그간 북한이 주요 국정사안을 노동신문을 통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사설은 김정은 후계체제 출범을 공식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각기관지도 “혁명 진두에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고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17년 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절대자 등극도 전광석화였다. 김일성 사망 이틀째부터 김정일은 ‘수령’으로 불렸고 추모대회 직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는 충성을 맹세하며 머리를 숙였다. 후계 준비기간이 짧은 김정은은 대내외에 권력의 공고함을 과시하기 위한 대관식(戴冠式)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 ‘천출위인(天出偉人)’ 김정은이라는 상징조작에 세뇌 받고 충성을 강요당할 북한 주민의 처지가 딱하다.

노동신문은 김정일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선군(先軍)영도와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대(代)에 걸쳐 파탄에 이른 국정의 방향을 3대째에도 답습하겠다니 답답하다. 과감한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 굶주린 주민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표방하는 구절은 사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들을 만나 “북한사회가 안정되면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유고(有故)는 꽉 막힌 남북관계에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과 미국은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인정했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어하려면 우리는 최고지도자가 김정은이건 제3자건, 아니면 집단지도체제건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북한 붕괴론에 매몰돼 정책적 실패를 맛봤지만 현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급변사태를 맞을 가능성을 포함해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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