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남희]여야 극한 대치에 ‘백봉신사상’도 못받는 국회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남희 정치부 기자
이남희 정치부 기자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박희태 국회의장)가 모범적이고 신사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친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신사(紳士)상’ 시상식이 6일 돌연 연기됐다.

당초 시상식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최 30여 분 전 행사장 문에는 ‘국회 사정으로 인해 연기됐습니다. 날짜는 추후 공지드리겠습니다’란 내용의 게시물이 붙었다. 갑작스러운 연기 소식을 미처 알지 못했던 축하객들은 공연히 헛걸음한 셈이 됐다. 기념사업회 측은 “여야 대치가 계속되고 있어 국회의장실에서 시상식을 내년 1월 5일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다음 달이라고 국회 사정이 좋아지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국회 사정’이란 실은 일부 수상자의 ‘수상 거부’였다. 올해는 한나라당 황우여 김성식 남경필 박근혜 정태근 홍정욱, 민주당 김진표 박선숙 박영선 정세균 의원 등 10명이 ‘신사의원 베스트 10’으로 선정됐다. 이 중 한나라당 김성식 정태근 의원이 이날 오전 10시 50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부끄러운 국회와 정치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수상식 자리에 설 면목이 없다. 지금도 국회는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상을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성명에서 “정파적 고정관념과 관성으로 격렬한 대립을 지속하는 우리 국회를 국민 여러분께서 얼마나 우려하는가를 저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자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의 후폭풍으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이는 상황에서 ‘모범적이고 신사다운 의정활동’에 대한 상을 받는 것을 스스로 ‘낯 뜨거운 이벤트’로 생각한 것이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며 제헌의원,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신사’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됐다. 매년 국회를 출입하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정치적 리더십, 업적, 성과, 교양과 지성, 모범적 의정활동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의원들을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가린다. 의원들이 영예롭게 여기는 상이다.

그러나 갈수록 여야의 거친 싸움이 계속되면서 이 상의 의미는 점차 퇴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백봉신사상 시상식 다음 날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신사가 사라진 국회에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선량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올해 시상식이 연기된 백봉신사상의 존립이 걱정될 지경이다.

이남희 정치부 기자 ir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