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칭 민주 진보 세력의 反민주 反진보 행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노무현 정부에서 타결된 지 4년 반이 지났다. 한미 FTA를 둘러싼 찬반 논의도 할 만큼 했다. 끝까지 합의가 안 될 때는 다수결 표결 처리가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합의 처리 시도는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회 다수파의 양보이지 의무가 아니다. 영국 미국처럼 의회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일수록 치열하게 설득전을 펴다가 마지막에는 표결 처리로 정정당당한 승부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의 합의 처리를 위해 민주당이 문제 삼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협상을 보장하는 약속을 했다. 이 대통령이 한 공개적 약속을 두고 민주당은 ‘한미 장관급 이상의 서면 합의서를 받아 오라’고 다시 트집을 잡았다. 자기 대통령의 약속은 못 믿고 미국 장관의 약속은 믿겠다는 말인가. 국민과 대통령을 무시하는 사대주의나 다름없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한미 FTA에 타협할 생각이 없었는지 모른다. 소수파(少數派)의 파쇼다.

민주당이 4년 반 전 스스로 체결한 한미 FTA에 이제 와서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야권 통합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야권 통합만이 정권을 탈환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민주당은 그 통합에 ‘민주 진보(進步) 세력 통합’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국민에게 진보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의 문을 여는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한미 FTA는 세계 10위권 교역대국인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을 뚫고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다. 경제와 분리할 수 없는 안보 강화까지도 포석에 둔 선택이다. 오로지 정권 탈환에만 혈안이 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구한말 쇄국주의처럼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나라를 주저앉히는 수구적 반(反)진보적 행태다.

민주당 등 야권은 반(反)이명박, 반(反)한나라당이면 모두 민주요, 진보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그 속에는 반(反)민주 반(反)진보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미 FTA는 이제 표결 처리 외에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물리적 저지라는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국민과 세계는 폭력으로 난장판이 된 국회를 또다시 TV로 지켜보게 될지 모른다. 민주당은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날치기라고 주장하며 국민의 동정표를 구하려 들 것이다. 정략에 눈이 어두워 민주적 절차와 국가 이익을 도외시하는 집단이 민주·진보를 참칭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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