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성노예 사건이 기밀이라고?” 누리꾼 항의에 中공안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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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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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24일 중국 언론과 누리꾼들이 권력과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 하나를 거뒀다. 이날 허난(河南) 성 뤄양(洛陽) 시 공안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중국을 경악하게 한 ‘성노예’ 사건과 관련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날 회견은 경찰행정의 수장이 관할구역 내 강력범죄 발생에 대해 사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성노예 사건은 이틀 전인 22일 난팡두스(南方都市)보가 처음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여성 6명을 납치해 2년간 지하실에 가둬놓고 성적 노리개로 부리다 2명을 살해하기까지 한 30대 현직 공무원을 공안당국이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공안당국은 지하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한 여성의 신고로 이달 3일 범인을 잡았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도시 한가운데서 발생한 일을 2년간이나 모르고 있었다는 추궁을 피하기 위해 20일 가까이 사건 발생 자체를 쉬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론에 충격적인 사건 개요 및 범인 검거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당황한 공안당국은 익숙한 패턴대로 움직였다. 사건을 보도한 지쉬광(紀許光) 기자가 임시로 묵고 있던 호텔로 신원미상의 기관원 2명을 보내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며 발설자 신원을 넘기라고 협박한 것이다.

하지만 지 기자는 이 사실을 즉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다. 누리꾼들은 “성노예 사건이 어떻게 국가 기밀이냐” “공안 책임자 개인의 기밀을 국가 기밀로 둔갑시키느냐”며 분노했다. 지 기자의 글은 삽시간에 5700여 건이나 전파됐다. 결국 이틀 만에 공안국장이 무릎을 꿇었다.

언론의 폭로→정부의 보도 중단 압력→누리꾼들의 비판→정부의 사과라는 과정을 거친 이번 사건은 중국 내 민주주의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비록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보통선거와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아직 요원하지만 비제도적 민주주의는 느리지만 뚜벅뚜벅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 기자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물론 나도 공안의 협박에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 하지만 대중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공안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들은 아직 권력에 종속돼 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의 이런 용기가, 누리꾼들의 이 같은 참여가 중국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유(加油·파이팅)!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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