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北核 용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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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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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북한 핵 위기가 한창이던 1994년 서울을 방문한 존 치프먼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에게 “이미 핵무기를 가진 나라가 많은데 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는가”라고 물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이 핵을 가지면 통일됐을 때 우리 것이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북핵에 온정적인 분위기가 없지 않았고, 따라서 그런 궁금증을 가진 국민도 많았다. 치프먼 소장은 “북한 정권의 불예측성과 호전성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2006년 8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언론사 간부들과의 회동에서 “북한은 인도의 상황과 비슷한데 인도는 핵 보유가 용인되고 북한은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북핵 위기가 진행된 지 10년도 훨씬 지난 시점에, 그것도 대통령이 그런 인식을 내비쳤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친북 좌파들은 그런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을 통해 경제적 보상 등을 대가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핵 포기는커녕 2차례 핵실험을 실시하고 우라늄 핵 개발까지 추가하는 등 오히려 핵 능력을 한층 강화했다. 고강도의 국제적 대북(對北) 제재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눈도 꿈쩍 않는다. 그 배경에는 북한 핵을 두둔하는 남한 내의 친북 좌파들에 대한 ‘믿음’도 깔려 있을지 모른다.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올해 7월에 이어 두 번째 남북 비핵화회담이 열린다.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전(前) 단계로 핵 포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만남이다. 그러나 이용호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는 어제 베이징에서 열린 9·19공동성명 6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대화에 앞서 전제 조건을 다는 것은 서로의 신뢰와 믿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우리 대표단이 단단히 마음먹고 회담장에 나가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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