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연욱]한명숙과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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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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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에게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 됐다”며 대선 출마를 적극 권유했다. 여성 후보를 내세워 기존의 대선 구도를 뒤흔들어야 승산이 있다는 특유의 정치적 ‘감(感)’이 발동했다. 한 씨를 첫 ‘여성총리’로 발탁한 것도 대선까지 내다본 포석이었다. 한 씨는 대선후보 제안을 사양했지만 자연스럽게 친노(親盧) 진영의 ‘얼굴’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러브콜을 받은 한 전 총리가 어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안철수 돌풍’을 업은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모양새다.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의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작년 4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9억여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판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한 전 총리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대법원 판결로 취임 7개월 만에 도지사직을 그만둬야 했던 전례를 고려했을 것이다.

▷지난해 6·2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인 한 전 총리는 민주당 내 경쟁력이 가장 높은 후보였다. 그가 경선에 불참하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마이너 리그’로 전락할 판이다. 일찌감치 서울시장 경선 출마 선언을 한 천정배 의원 등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전 총리가 빠지면 야권통합 후보 경선의 흥행이 안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시장후보도 제대로 못 내는 민주당이 정권 탈환을 꿈꾸는 제1야당이냐”는 비판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박 변호사는 어제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만나 “현재로선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선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현재’라는 단서는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올릴 때까지를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 박 변호사에게 미칠 득실은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조순 민주당 후보는 물밑에서 시험 가동된 DJP(김대중+김종필)연대 덕분에 극적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에 뛰어든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는 민주당과의 통합 경선에서 이겼지만 본선에서는 쓴잔을 마셨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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