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간첩수사 불응해도 통하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4일 03시 00분


공안당국이 북한과 연계된 반(反)국가단체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조합원 10여 명에게 검찰 출석을 통보했지만 이들은 불응하고 있다.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수사선상에 오른 민주노동당도 소환에 불응하기로 했다. 간첩 행위는 아직 우리와 대치 상태에 있는 북한에 각종 기밀을 제공하는 등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다. 수사 대상자들이 수사를 안 받겠다며 버티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이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안보불감증도 문제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어제 “북한 대남(對南)공작기구인 내각 225부가 ‘왕재산’에 간첩행위를 지령했고 내각 225부는 김정일 정치군사대학과 직접 연계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은 국방위원회 정찰총국 산하의 간첩 양성기관이다. 공안당국은 월간지 ‘민족21’ 관계자들이 정찰총국 지령을 받은 단서도 확보했다. 혐의대로라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정찰총국은 천안함 연평도 도발, 농협 전산망 공격의 주범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이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부 인사는 ‘경제가 다 망한 북한이 어떻게 우리를 때리겠느냐’는 식의 말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인식을 비웃듯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시켰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사실상의 전쟁 행위를 자행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파고든 종북(從北)세력은 북한 김정일 집단과 호흡을 맞추며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고 국론을 갈라놓고 있다. 이들은 친북을 넘어 종북과 김일성 왕조 숭배로 대한민국에 엄청난 ‘이념 코스트’를 치르게 하고 있다.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에 주사파 세력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반값 등록금’ 시위를 이끌던 단체들 가운데 한 곳이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받았다. 종북세력이 각종 정치적 이념적 시위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남한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서 ‘체제의 승리’라고 단언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민노당과 민주노총이 종북세력의 숙주(宿主)라는 의구심을 걷어내려면 수사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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