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문재인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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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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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의 젊은 날 특전사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다. 너무나 잘생기고 늠름해서 병역의혹 많은 현 정권을 겨냥해 시사하는 바도 크다. 이 사진이 실린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은 발간 두 달도 안돼 15만 부 이상 팔렸다. 여대 도서관엔 대출 예약자가 열 명이 넘는다.

무엇이 젊은 세대를 매료시켰을까 궁금해 꼼꼼히 읽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흠모가 절절하게 전해졌다. 당시 국정철학과 정책을 미화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까지 틀리게 기술하고 이를 근거로 노 정부의 숭고함과 ‘노무현 정신 계승’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이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헌법기관장이 배출돼 여성 사회진출의 새로운 장이 열릴 기회”였고 “참여정부가 사법개혁 방안을 마무리해 사법제도는 크게 선진화”됐는데 “한나라당의 정략적 반대로 무산됐다”고 두 번이나 언급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성 헌재소장이 못 나온 결정적 이유는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절차상 하자를 들어 위헌 소지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盧 정부의 독선·헌법경시 잊었나

2006년 대통령은 사법시험 동기인 전효숙 씨를 임기 6년의 헌재소장에 앉히려고 임기가 3년 남은 헌법재판관 직을 사퇴하게 했다. 조 의원은 인사청문특위가 열리자 “민간인 신분인 전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요청은 ‘헌재 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길어지면서 여당마저 돌아서자 103일 만에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뜬금없이 한나라당 탓을 한 것이다.

그가 변론을 맡았던 동의대사건에 대해 “진압에 투입돼 목숨을 잃은 경찰관이나 (이로 인해) 형을 살았던 학생들이나 시대의 피해자”라고 쓴 대목도 납득하기 어렵다.

1989년 한 교수의 입시부정 폭로에서 시작돼, 경찰들이 농성하는 학생들에게 감금된 전경들을 구하려다 화재로 숨진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가해자가 있다면 그런 상황을 만든 독재정권”이라며 “학생들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이 순직 경찰관들을 모욕하는 것인 양 오도하면서 증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엉뚱한 데 화살을 날렸다.

두 대목의 서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 진실인지, 뭐가 옳고 그른지, 심지어 민주화운동이 뭔지를 제대로 판단 못하는 문재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군(主君)이 주장했고 문재인이 계승하겠다는 ‘사람 사는 세상’에선 ‘그 놈의 헌법’이나 법절차는 무시돼야 한다고 믿는다면 더 심각하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처럼 왜곡하고 나라의 정체성과 국기(國紀)를 흔들었던 불온한 기운이 되살아날 수 있어서다.

문재인은 민정수석 재임 중 끝내 못해서 뼈아픈 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었다. 왜 이 법을 폐지해야 하는지는 한마디도 없다. 각주에 깨알글씨로 “정권안보와 이데올로기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 국내는 물론 유엔인권위원회도 인권제약 소지가 있다며 문제제기”라고 썼을 뿐이다.

2004년 대통령이 “위헌이든 아니든 악법은 악법”이라고 폭언한 국보법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은 합헌이고, 존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라 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자유까지 허용해 자유와 인권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문은 다시 봐도 가슴을 친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민노당과 손잡고 국보법 폐지안을 날치기 상정했다. 2005년 2월 10일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무장해제 당했을지도 모를 판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문재인은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범야권 통합에 전력하겠다니 각종 악법(국보법) 철폐와 연방제 방식의 통일, 기간산업 국유화를 강령에 명시한 민노당과도 손잡을 공산이 크다. 총선이나 대선후보로 나설 뜻은 아직 안 밝혔지만 그가 야권 통합에 큰 몫을 하고, 그 결과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친노(친노무현)와 PK(부산 경남)를 업고 대권주자로 뜰 가능성도 적지 않다.

‘親北 증오정부’ 부활이 두렵다

노 전 대통령이 끝장내겠다던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가 문재인 대망론을 띄우고 있다. 그러나 노 정권 때의 반칙과 특권도 만만치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이 “저의 집(권양숙 씨 지칭)에서 부탁해 받아 사용한 것(돈)”이라고 사과했던 박연차 사건에 대해 “권 여사님이 대통령에게 한 큰 실수”라고 간단히 쓴 문재인이다. 이런 문재인의 판단력에 우리의 운명까지 맡긴다면, 2004년 원로 1400명의 시국선언대로 “소위 진보의 가면을 쓴 친북·좌경·반미세력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멍들게 하는”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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