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푼도 아니고 큰맘 먹고 샀죠. 그런데 막상 볼 게 없더라고요.” 기자의 한 지인은 3차원(3D) TV를 산 것을 올 들어 지금까지 가장 후회되는 일로 꼽았다.
볼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얘기는 엄살이 아니다. 현재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에는 3D 채널이 없다. 스카이라이프 전체 211개 채널 중 3D 채널은 딱 하나뿐이다. TV와 모니터 등 3D 재생기기는 늘었지만 콘텐츠가 없는 것이다. 전자업계는 이를 “마치 수영장에 물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3D 기술은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홈 네트워크 등 앞으로 활용도가 높아 향후 유망 산업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의 낮은 3D 콘텐츠 제작수준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3D 콘텐츠의 빈곤은 인력과 자금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3D 촬영경험이 있는 국내 인력은 지난해 개봉한 ‘나탈리’의 스태프가 유일하다. 더욱이 3D 영화 제작비는 2D보다 최대 2배 더 든다. 3D 전용 카메라는 하루 빌리는 데 1000만 원이 넘는다. 중소 개발사들이 3D 콘텐츠 제작에 엄두도 못 내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3D 콘텐츠의 부족이 3D TV 수요 부진으로, 이것이 다시 3D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3D TV 제조회사들은 생사를 걸고 마케팅에만 나설 뿐 소비자들을 위한 콘텐츠 제공에는 소극적이다. 최근에야 TV를 인터넷에 연결해 3D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게 했지만 삼성전자는 30편, LG전자는 60편이 전부다. 정부의 움직임도 미지근하다. 정부는 작년 말 ‘3D산업 통합 기술로드맵 기획단’을 구성했지만 콘텐츠 제작회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예산의 대부분이 3D 기술 자체 연구개발(R&D)에 집중되면서 콘텐츠 개발사들은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와 같다. 3D 콘텐츠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3D 영화의 대표작인 ‘아바타’는 이 한 편으로 28억 달러(약 3조 원)에 이르는 수익을 올렸다. 이는 46인치 3D TV(300만 원) 기준으로 약 100만 대, 자동차 쏘나타(2500만 원) 기준으로 12만 대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왜 콘텐츠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치열한 기술 경쟁을 거듭해 3D TV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과 LG가 국내 소비자는 도외시한 채 해외시장에만 신경을 쓴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콘텐츠를 외부에서 사오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수백만 원을 들여 장만한 3D TV에서 기껏 평면적인 콘텐츠만 방영된다면 TV 수요도 금세 정체되고 만다. 닭이든 달걀이든 열심히 보호하고 키워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