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 문화계의 화제의 키워드는 단연 ‘추억’이다. 개봉 3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인 국내 영화 ‘써니’는 7080세대 여성들의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꿈과 우정을 그렸다. 지금은 올드팝이 되어버린 외국 팝송과 가요 등 ‘추억의 노래들’이 영화 전반에 흐른다. 이 음악은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배가하면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숨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방송계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또는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추억의 노래들을 미션곡이나 경연곡으로 선정하고 있다. 10, 20대들에게는 진정한 ‘명곡’을 깨닫게 해주고, 30∼50대 중장년층은 이 노래들이 방송 전파를 탈 때마다 타임머신을 탄 듯 지난날을 회상할 아련하고 따스한 기회를 얻는다. 방송에서 불러진 노래들은 각종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 공개돼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문화계 전반에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화제의 중심에 있다.
이렇듯 요즘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의 노래들이 뜨거운 인기를 얻는 데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세시봉’ 특집 프로그램이 출발선에 있다고 본다. 국민가수 조영남 씨와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씨 등 ‘세시봉’의 주역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에 ‘포크송’ 열풍을 몰고 왔다. 이들은 한참 활동하던 시점으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국내 전국 투어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교포들을 위한 전미 투어까지 그야말로 중장년층의 엄청난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됐다.
‘세시봉’ 계기 중장년층 욕구 폭발
이후 기성세대의 추억과 관련된 키워드가 문화 전반에 화제로 떠오르며 이와 관련된 영화, 방송, 공연, 음악들의 콘텐츠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여러 방면에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추억과 관련된 문화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대중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불만은커녕 오히려 이와 관련된 더욱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상품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 기성세대들의 ‘문화적 욕구’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혼성그룹 ‘아바’의 명곡들로 구성해 몇 해 전 개봉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뮤지컬을 토대로 만든 같은 이름의 영화 역시 전 세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빅 히트’를 쳤다.
영화 맘마미아가 개봉된 당시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국민가수 겸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새 앨범을 내놓았다. 같은 시기에 스트라이샌드보다 훨씬 ‘젊은’ 인기 여가수인 머라이어 캐리와 마돈나 역시 신보를 내놨던 바 있다. 하지만 스트라이샌드의 앨범은 이들을 제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화계에서 추억과 관련된 주제의 콘텐츠가 여러 세대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그동안 문화계 전반에서 소외되어 온 30∼50대, 더 나아가 60대의 문화적 충족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요즘의 40대와 50대는 정신적 나이뿐 아니라 신체 나이로도 예전의 40, 50대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결혼해서도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증가해 이제 그들이 주축인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자녀들이 자신의 일을 찾아 독립하더라도 꾸준히 자기 직업을 갖고 있는 부부들이 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여가생활을 즐기는, 요즘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골드 미스’들이 늘어나면서 문화계 최고의 소비층이라 할 30대 여성에서부터 40대와 50대 여성까지 저변이 넓어졌다. ‘3대 모녀’라고는 하지만 외향적으로나 내향적으로 그 나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젊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손녀가 함께 손을 잡고 내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롭고 신기한 현상이 점차 ‘보통의 일’이 되고 있다. 실제 내 음악회를 찾는 관객 구성만 보더라도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이 때문에 공연 레퍼토리를 짤 때 정통 오페라 아리아에서부터 최신 댄스곡까지 섭렵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곡을 찾게 된다.
여러 세대 공유할 문화콘텐츠 절실
문화계는 이러한 현상을 신기해하고 환영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이들을 위한 새로운 문화 콘텐츠와 상품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문화라는 것은 번뜩이는 창의성을 무기로 한 10대와 20대가 선두자리에서 이끌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생각은 도리어 시대착오일 수 있다. 여러 세대가 함께 품고 공유하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수록 문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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