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정치불신만 키우는 ‘맞고소 취소 정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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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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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이승헌 정치부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하지 말 것이지….”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3일 지난 1년간 제기된 양당 간의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징계요구안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결정으로 지난해 말 예산안 처리 폭력사태에 연루된 한나라당 김성회 이은재, 민주당 강기정 최영희 의원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차남의 서울대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 박 원내대표, 이석현 의원 등이 피소를 면했다. 예산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윤리특위에 제소된 안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징계요구도 없던 일이 됐다. 김 원내대표는 2월 21일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국회 폭력을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불과 두 달도 안 돼 이를 뒤집는 합의를 했다.

물론 정치권의 고소·고발 남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합의가 ‘소통 부재’의 여의도에 정치를 복원시키는 작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옛날 일은 털고 가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도돌이표’ 식 고소·고발 취소는 국민의 정치 혐오와 불신을 오히려 증폭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여야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고 나선 선명성 경쟁을 위해 고소·고발한 뒤 정치적 긴장상태가 해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서로의 짐을 덜어주는 것은 ‘정치 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예산안 처리 폭력사태 와중에 주먹다짐을 했던 강기정, 김성회 의원은 지난달 한 모임에서 ‘러브샷’을 하는 코미디를 연출했다.

과거에도 여야가 상호 고소·고발을 전격 취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명분이나 설명은 있었다. 2008년 6월 한나라당은 17대 대선에서 BBK 의혹 등과 관련해 민주당 측에 제기한 고소·고발을 모두 취소했다. 당 일각에서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반대도 있었지만 당시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와 관련해 민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민주당도 환영했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권 의원은 “국민들은 동남권 신공항 등 공약을 못 지키더니 고소·고발하겠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느냐고 욕할 것”이라며 “이래가지고는 정치인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여야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합의한 고소·고발 취소는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버린 정치권의 현주소를 재확인하는 씁쓸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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