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기슭 소백수 가까이에 ‘백두산 밀영’이라는 귀틀집이 있다. 그 뒷산엔 커다란 붉은 글씨로 ‘정일봉’이라 새겨져 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백두산을 성역화하면서 김일성이 1936년 그곳에 들어와 숙영했고 김정일도 1942년 거기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정일은 구소련의 보로실로프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게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선 정설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김일성 장군과 김정숙 여장군이 묵은 이곳에서 ‘광명성(김정일)’이 태어났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혁명성지’가 최근 남북 대화의 의제로 등장했다. 백두산에 화산분화의 전조(前兆)현상이 잇따른 때문이다. 2002년부터 갑자기 지진활동이 빈발하고, 몇 년 사이 천지 주변의 지형이 10cm 이상 부풀어 오른 것으로 관측됐다. 백두산 일대 지표면 온도가 급증하고 온천 수온이 12도나 올랐다는 증언도 나왔다. 특히 러시아의 관측위성은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백두산 정상에서 열이 유출된 사실을 포착했다. 러시아 측은 핵실험이 백두산 지하에 폭넓게 퍼져 있는 마그마방을 활성화시켜 고온의 가스를 방출한 것으로 해석했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 가능성은 논란거리다. 2014년 또는 2015년 분화 가능성을 제기한 중국 화산학자가 있지만 최근엔 화산활동이 잠잠해졌고 분화 징후도 없다는 지적이 많다.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화산이 가까운 시일에 폭발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시일은 100년 이내”라고 말한다.
어쨌든 잇단 경고음에 긴장한 탓인지 북한은 2007년 남측에 백두산 지진 실태조사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남측도 지원을 고려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북한이 이번에 다시 백두산 이슈를 꺼낸 타이밍은 절묘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전 세계에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는 시점이었다.
일본의 원전 사고는 지진이라는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가 겹친 참사였다. 핵실험이 백두산 지하의 마그마방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2009년 2차 핵실험을 강행했던 북한은 근래 백두산 정상에서 110km 떨어진 핵실험장에 추가로 갱도를 뚫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3차 핵실험은 백두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을 촉발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현대사회를 환경오염과 생태위기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 ‘위험사회’로 정의한다. “그동안 계급사회를 이끌어온 동력이 ‘나는 배고프다!’였다면 위험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나는 두렵다!’는 불안”이라고 베크는 지적한다. 다만 이런 ‘불안의 공동체’가 사람들을 비합리주의와 광신상태로 몰고 가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안의 유대감은 전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여는 정치적 운동을 태동시킬 것이라고 베크는 기대한다.
10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946년과 947년 백두산 화산 폭발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편서풍을 타고 일본까지 날아간 사실은 고려사와 일본사서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당시 날아온 화산재가 5cm 이상 쌓였다고 한다.
백두산 대폭발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 앞에서 동북아 지역은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불안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침략과 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 탓에 불신과 반목이 가득한 동북아에서 곧 닥칠지 모를 현실은 새로운 협력의 공동체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때론 재난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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