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식량 데이터도 안 내놓고 손만 벌리는 北

  • 동아일보

김정일 정권이 변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은 올 춘궁기(春窮期)도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주 북한을 도와야 한다며 43만 t의 식량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으나 주요국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어제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북한 식량 상황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이라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지원 식량이 군량미로 전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엄격한 분배 감시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핵개발에 이어 동족을 상대로 무력도발을 저지른 북한 정권의 호전성은 국제사회의 온정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김정일 정권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면 우리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연평도 도발 이후 중단된 민간 차원의 대북(對北) 인도적 지원을 5개월 만에 허용했다. 그제 유진벨재단이 3억 원 상당의 내성결핵약 반출을 승인 받은 데 이어 어제는 빵 콩우유가루 사탕 등 3000만 원어치를 북한에 보내겠다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신청이 허용됐다.

최근 북한은 재외공관을 통해 미국 영국을 비롯한 수십 개국에 식량지원을 호소했다. 평양을 방문한 외국 외교관에게도 쌀을 달라고 매달렸다. 북한은 남북 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50만 t의 쌀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북한의 이례적인 구걸행보를 미심쩍게 보고 있다. 북한이 내년 강성대국 완성 선언을 앞두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앵벌이를 한다는 의혹도 있다. 차후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식량을 보낼 때는 군량미로 전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정말로 어렵다면 식량 상황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하는 수원국(受援國)으로서의 자세다. 북한에서 식량난 실태를 제대로 조사할 수 없으니 WFP 보고서까지 불신 받는다. WFP는 배급량 도정률 하곡(夏穀) 수확량을 근거로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산출했으나 허점이 많다. WFP는 작년 11월에는 북한의 식량 부족을 86만 t으로 추정했으나 불과 4개월 만에 108만 t으로 늘려 불신을 자초했다. 이러한 추정치의 오차도 북한이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고 충분한 현지 확인을 할 수 없는 데서 생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