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덩신밍을 끝까지 감추려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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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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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혹시 아파트에서 내 소식 들은 거 있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주재원 A 씨는 지난해 10월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 소속 K 상무관(당시 직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날은 A 씨와 K 상무관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K 상무관과 H 영사 부인이 불륜이라고 주장하는 대자보가 붙은 날이었다. 중국인 여성 덩신밍(鄧新明·33) 씨와 K 상무관, 법무부 파견 H 영사 등 당시 상하이총영사관 일부 외교관이 얽히고설킨 추잡한 ‘상하이 스캔들’은 이때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자보는 K 상무관과 H 영사 부인을 음해하려는 목적으로 덩 씨가 꾸민 것으로 추정된다.

덩 씨는 당시 H 영사와 부적절한 관계였다. 또 한때 사이가 좋았던 K 상무관과는 틀어진 상태였다. 그즈음 K 상무관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은 저와 상관없습니다. 제 사랑은 진심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덩 씨 협박 아래 작성해 덩 씨에게 건넸다. 덩 씨 협박이라는 것은 K 상무관 주장이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A 씨가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자 K 상무관은 “별 일 아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A 씨는 지난주 동아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이 스캔들이 보도된 뒤 느낌이 이상했던 5개월 전 통화를 떠올렸다. 그는 “대자보가 어느 정도 알려졌는지를 알아보려고 통화를 했지만 K 상무관의 입에서 덩 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K 상무관과 H 영사의 친구인 또 다른 한국인 주재원 B 씨도 비슷하다. B 씨는 “참 친한 친구들과 속내를 많이 나눴는데 덩 씨 관련해서는 전혀 말을 안 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같은 학과 2년 선후배 사이로 나이는 한 살 차이다. 행정고시도 비슷한 시기에 합격했다. 총영사관 근무 초기 둘 사이는 매우 가까웠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이었지만 덩 씨가 중간에 끼면서 주먹다짐을 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둘은 모두 덩 씨의 존재를 철저히 감췄다.

직장 동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한 영사는 “회의나 회식 등에서 두 사람은 덩 씨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철저히 부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둘 다 귀국하는 순간까지 덩 씨와의 소문은 모함이라고 강조해 우리는 이들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덧붙였다.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 2명에게 덩 씨와의 관계는 사건이 불거질 때까지 다른 사람이 몰라야 하는 비밀이었다. 왜 그랬을까. 외교관으로서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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