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분당을’의 小人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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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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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4·27 재·보선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를 둘러싼 여권의 암투는 2011년 3월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축도(縮圖)다. 비전 없는 ‘돌려막기’ 후보 충원 기도에, 안전판부터 확보하려는 ‘웰빙정당’의 구태, 구원(舊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치졸한 자리다툼, 금배지 하나에 목숨 거는 용렬함까지….

한나라당은 15일 재·보선 후보등록을 마감했다. 하지만 분당을 예비후보 명단에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이름은 없었다. 그의 출마 여부를 놓고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왜 정 전 총리일까.

정운찬 후보론엔 親李의 不姙공포

여기엔 정권을 창출하고도 아직까지 마땅한 후계자를 내지 못한 친이(친이명박) 집권세력의 불임(不姙) 공포가 숨어 있다. 충청 출신인 정 전 총리가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검증까지 거치면 내년 대선정국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정운찬 후보론’의 바닥에 깔려 있다. 그리고 이를 물밑에서 밀어붙이는 이가 이재오 특임장관이란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문제는 이 장관이 정 전 총리를 미는 게 ‘친이 재집권’ 전략 차원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장관은 2006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강재섭 후보에게 패한 뒤 칩거했다. 결국 당무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두고두고 반목했다. 이 장관의 ‘정운찬 밀기’가 일찌감치 분당을 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배제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더구나 이 장관은 2008년 18대 공천 때도 ‘이재오 사천(私薦)’ 논란을 빚지 않았던가. 이번 재·보선에선 좀 자제하는 게 본인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더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정운찬 후보론’을 둘러싼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정 전 총리 자신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 전 총리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마다 모호한 말로 논란을 키웠다. 2007년 대선 때도 몇 개월을 저울질하다 중도 포기했다. 지난달 분당을 출마 여부를 묻는 본보 기자의 질문에는 “동반성장위원회 등의 업무가 바빠 출마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도 “출마한다, 안 한다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정 전 총리가 이렇게 ‘햄릿형 행보’를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전략공천하지 않는 이상 분당을 당선이 불안한 마당에 섣불리 나섰다가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출신’이란 정치적 상품가치를 더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흔한가.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 일개 지역구 출마를 놓고 너무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은 보기가 좀 그렇다.

정 전 총리는 모호한 말로 논란 키워

분당을에 매달리는 강재섭 전 대표는 측은함마저 자아낸다. 한때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빗대 ‘토니 강’으로 불리며 이회창의 아성에 도전하려던 ‘TK(대구경북)의 적자(嫡子)’였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룰 파동 때는 대표직은 물론이고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어 분란을 잠재웠고, 2008년 공천심사 갈등 때는 ‘총선 불출마’ 카드도 던졌다. 그렇게 대표직, 의원직을 ‘초개처럼’ 던졌던 그가 오늘날 갖은 수모를 무릅쓰고 분당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러니 “18대 총선 불출마는 박근혜 바람 때문에 대구에서 떨어질 것 같으니 선수 친 것 아니냐”는 말이 도는 것도 당연하다.

‘정운찬은 실패한 총리’ ‘강재섭은 5공 인사’라며 돌아가면서 정 전 총리와 강 전 대표의 분당을 출마에 발목을 잡는 홍준표 최고위원은 또 어떤가. 지금 전 지구촌이 일본에 닥친 미증유(未曾有)의 재앙에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이 가장 앞장서야 할 때, 지역구 하나를 놓고 물밑 다툼을 벌이는 집권세력 지도급 인사라는 분들이 참으로 작아 보인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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