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승룡]농협 개혁, 이제 시작일 뿐이다

  • Array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농협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농협중앙회의 신용부문과 경제부문을 분리해 2012년 3월 각각 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개정 농협법은 농업인에게 실익을 줄 수 있는 구조로의 개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은 농협 개혁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불과하다. 농협법에 담긴 내용들이 농협의 구체적인 형태나 운영방식, 지배구조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 개정이 오히려 농협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농협과 정부는 이제부터 새로운 농협을 디자인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핵심 쟁점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신용부문은 자본 건전성을 위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킬 자본금이 필요하고, 경제부문은 독자적인 사업을 위한 자본금을 필요로 한다. 원칙적으론 농협이 스스로 자본금을 마련해 금융자본이나 투기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체성을 지키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개정된 농협법은 불과 1년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부족한 자본금을 책임지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말 바꾸기와 얼버무리기로 일관해 앞으로 농협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는 농협의 정체성과 자율성, 농협 개혁의 성과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권 차원의 분명한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정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신경분리의 최대 명분인 경제사업 활성화에 대한 청사진도 불투명하다. 국회의 최종 심의과정에서 경제사업 활성화 조항이 삽입됐고, 이것으로 개정 농협법의 타당성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농협법 개정 시 경제사업 활성화가 명문화돼 2016년까지 다양한 사업이 진행된다. 농협법 개정이 실제로 경제사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했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의 성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우선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 그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신경분리의 진짜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음모론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신경분리가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농협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다시 돌아갈 곳을 잃은 농협중앙회는 공중분해되고 말 것이며, 신경분리를 주도한 사람들은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주어진 일정에 따라 엄격한 검증 절차나 다양한 조건을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생략한 채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어떻게 되겠지 하는 요행을 바라는 심정으로 접근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농협 개혁은 시행착오를 거쳐 교훈을 얻고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두드리고 또 두드려 본 후에 건너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협 개혁은 농민들과 가장 접점에 있는 지역농협의 개혁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농협 개혁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각자의 이해관계나 불만은 접어 두고 모두의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농협 개혁,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