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농업 보조금 빼먹는 ‘세금 도둑’ 엄벌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허위 서류를 만들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빼돌린 임모 씨(60)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피의자 임 씨는 전남 화순군이 2006∼2009년 추진한 산양삼(山養蔘) 재배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해 쓰지도 않은 사업비를 사용한 것처럼 허위 증빙서류를 제출해 보조금 1억2000여만 원을 받아 챙겼다.

광주지법 형사4단독 박현 판사가 판결문에서 지적한 일부 농민과 지자체의 행태는 ‘농업 보조금 빼먹기’의 폐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농업 지원금은 먼저 먹은 사람이 임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일부 농민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보조금을 챙겨 희희낙락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보조금 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는 누가 봐도 의심이 드는 세금 계산서나 간이 영수증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인정하는가 하면 현장 실사(實査)도 형식적으로만 했다.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농민은 약자’라는 생각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친 사례가 많았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16년간 정부가 보조금이나 융자 형태로 집행한 농업분야 지원 예산은 127조 원을 넘는다.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한국 농업의 국제경쟁력은 여전히 낮고 농가의 소득도 그리 늘어나지 않았다. 경제적 효율성을 무시한 채 정치적 고려에 따라 주먹구구로 이뤄진 농업 포퓰리즘이 낳은 실패다.

농업 지원금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와 낭비, 부패와 공무원 유착은 뿌리가 깊다. 보조금이나 저리(低利) 융자 혜택을 받는 농민은 전체의 약 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는 말만 농민이지 실제 영농(營農)은 뒷전이고 지원금 배분 권한을 가진 지방공무원 접대에 열성인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농민 사이에서조차 ‘술집이나 다방에서 농사를 짓느냐’라는 비판이 나왔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예산의 성역(聖域)처럼 취급받는 분야가 있다. 농민이나 중소기업 지원이 대표적이고, 요즘 논란이 된 복지 분야도 그런 양상이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국민의 세금인 국가 예산이 집행 과정에서 줄줄 새는 왜곡된 현실은 바로잡아야 한다. 각종 보조금을 쏙쏙 빼먹는 세금 도둑은 엄벌하고, 이런 풍토를 조장하는 일부 지자체 등 행정기관에는 지원금 삭감 같은 불이익을 줄 필요가 있다. 박현 판사가 쓴 판결문에서 ‘화순군이 몇 년간 산양삼 재배사업에 지원한 보조금 수십억 원은 의미 없이 야산에 뿌려진 낙엽이었고 불량한 자들의 호주머니를 채운 용돈이 돼 버렸다’는 내용은 화순군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나라가 부패불감증에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