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이명학]한글과 한자, 언어생활의 두 수레바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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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부산과 경남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최근 개통됐다. 거가대교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한, 바다 밑에 터널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인 ‘침매공법’으로 화제가 됐다. 침매는 한자로 ‘沈埋’로 쓰며 영어로는 ‘submerged tunneling method’라고 한다. 만약 한글로 침매라고 쓰면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 영어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沈(가라앉다)埋(묻다)’라 한 것이다. 우리말에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한파가 밀려오다’의 한파(寒波)도 영어 ‘cold wave’를 바꾼 것이며, 연미복(燕尾服)은 ‘swallow tailed coat’, 물망초(勿忘草)는 ‘forget me not’, ‘각광을 받다’의 각광(脚光)은 ‘foot light’의 번역이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한자 어휘는 영어 단어에서 온 것들이 많다. 심지어 영어와 한자가 결합된 어휘도 적지 않다. 깡패는 ‘gang’과 패(牌·무리)가, 깡통은 ‘can’과 통(桶)이 결합된 것이다. 요즈음 흔히 쓰이는 신조어 대부분이 이런 것들로 컴맹(com盲), 광클(狂cl), 악플(惡pl), 선플(善pl), 그리고 예전부터 써왔던 급커브(急curve), 급템포(急tempo), 세미나실(seminar室), 테이블보(table褓), 택시비(taxi費), 스키복(ski服)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일본어와 결합된 것도 무심코 쓰고 있다. 우리가 주유소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는 ‘만땅’은 만(滿·채우다)과 ‘tank’의 합성어로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우라는 뜻이며, ‘땅’은 tank의 일본식 발음 ‘단쿠’에서 온 것이다.

한자, 복잡한 개념 축약에 강점

얼마 전 뉴스에서 ‘강소기업(强小企業)을 육성해야’라는 자막을 보았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금세 ‘작지만 강한 기업’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점점 발달하여 새로운 용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외국어 신조어들은 대개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자로 적절히 바뀌어 들어온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그것을 한글로만 썼을 때 한자를 모르고는 의미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영어로 된 것을 그대로 쓸 수도 없고 그 용어를 우리말로 다 풀어서 쓸 수도 없다. 용어는 개념을 함축적으로 포괄해야 한다. 침매공법을 ‘항만이나 하천 등에서 터널의 일부 또는 전부를 미리 제작하고 물에 띄워 계획한 위치로 예인한 후 가라앉혀 터널을 건설하는 공법’이라고 풀어서 말하고 쓸 수도 없지 않은가.

한자는 이처럼 장황하고 복잡한 개념을 가장 작은 단위의 어휘로 축약할 수 있는 좋은 기능이 있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출차주의(出車注意)’라는 표지판이 있다. 만약 한자가 싫어 이것을 풀어 쓴다면 ‘차가 나오니 조심하세요’라 해야 할 것이다. 넉 자면 될 것을 열 자로 써야 하니 경제적으로도 낭비일뿐더러 시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가독성도 떨어진다.

백화점에 가면 옷가게에 ‘갱의실’이라는 곳이 있다. 사고 싶은 옷이 몸에 잘 맞는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지 입어 보는 곳이다. 병원에서도 옷을 갈아입는 곳을 똑같이 갱의실이라 한다. 그러나 갱의실은 잘못된 표기이며 ‘경의실’이라고 해야 옳다. ‘更’은 음이 두 가지로 ‘다시 갱’ ‘바꿀 경’이다. 이곳은 옷을 바꾸어 입는 곳이지 다시 입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경의실이 맞는 표기이다. 만약 이것도 한자어로 쓰기 싫어 ‘옷을 갈아입는 곳’이라 쓴다면 ‘출차주의’를 풀어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자는 이처럼 포괄적인 개념을 축약하고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강소기업도 그렇고 침매공법도 그러하다. 한자가 싫다고 영어로 쓴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말과 글을 더욱 오염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어휘를 반드시 한자어로 쓰자는 것은 아니다. 한자 어휘를 풀어 쓸 수 있는 것은 바꾸어 쓰는 것이 옳다. 예컨대 예전에 쓰던 구근식물(球根植物)을 알뿌리 식물로, 방안지(方眼紙)를 모눈종이로 바꾸어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方은 ‘모 방’으로 네모의 뜻이며 우리가 앉는 방석(方席)도 네모 모양의 자리란 뜻이다. 이렇게 한자 어휘를 쉽게 풀어 쓰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하지만 아무리 바꾸어도 바꿀 수 없는 어휘들은 한자어로 쓰는 것이 정확하게 개념을 알 수 있으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쉽게 풀어 쓰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자는 이미 우리글이 없던 수천 년 전부터 조상들이 익숙하게 써왔던 동아시아 중세사회의 보편적인 문자이다. 우리글이 없었던 그 옛날 새로 생겨난 수많은 어휘들을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가 하는 말을 어떻게 적을 수 있었겠는가. 한자는 우리글이 없던 시절의 공백을 메워주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을 원활하게 한, 모양이 다른 또 다른 우리 문자이다. 한글과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발전해 나갈 때 우리의 언어생활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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