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회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추대 영순위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부터 회장 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그제 열린 회장단 회의에 4년째 불참했다. 주요 그룹 회장들도 고사하고 있어 ‘외부인사 영입’ 주장도 나온다. 전경련은 조석래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퇴진 의사를 밝힌 이후 6개월째 사실상 수장이 없는 상태다. 2월 총회 때 새 회장을 선임하지 못하면 4년 전처럼 전경련이 ‘무용론’ ‘해체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1961년 창립 이후 ‘재계의 본산’ 노릇을 해온 전경련이 회장 구인난에 빠진 것은 1999년 김우중 당시 회장의 퇴진 이후다. 김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하며 국내외 행사에 대통령과 빈번히 동행했지만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의 대표로서 시장경제와 재계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 쓴소리를 해야 하는데 실익은 없고 부담만 크다. 대기업 회장들은 기업경영도 벅찬데 전경련 회장 감투를 쓰고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기업들을 조정하느라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은 전경련의 정체성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 전경련은 상공인 모임인 상공회의소나 노사관계에 주력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보다 정체성이 약하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처럼 정부와 재계를 연결하는 역할은 대부분 사라졌다.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에 끼어들었다가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전경련이 제 역할부터 찾아야 위상도 되살아날 것이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그제 “전경련은 역할을 잘 하고 있으며 위상이 낮아졌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재계의 평가와 차이가 크다.
▷10년 전 전경련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나온 해법은 권위 있는 싱크탱크로의 변신이었다.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싱크탱크로 키우는 정도가 아니라 전경련 자체가 싱크탱크로 환골탈태하는 방안이었다. 그렇게 되면 기업경영 연구를 넘어 국가경제 운용 어젠다를 제시해 시장경제를 튼튼히 보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요즘 같은 때 엉터리 무상복지 주장에 반론을 펴면서 국민의 이해와 선택을 돕는 싱크탱크가 있다면 요긴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주요국에 비해 싱크탱크 수가 지나치게 적고 영향력도 작다. 전경련은 회장 찾기보다 역할 찾기가 더 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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