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한국 과학계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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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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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한국인 이름은 없었다. 고은 시인이 문학상 후보자로 몇 년째 거론됐지만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한 공로로 평화상을 받은 이후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아직 낭보(朗報)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웃 일본은 올해도 홋카이도대의 스즈키 아키라 명예교수와 미국 퍼듀대의 네기시 에이이치 특별교수가 금속 촉매를 이용한 유기화합물 합성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화학상을 받아 열도 전체가 들썩였다. 벌써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특히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등 과학 분야 수상자가 14명이 나와 과학 선진국임이 입증됐다. 전기전도성이 뛰어나고 잘 휘어져 ‘꿈의 나노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 연구에서 김필립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가 물리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한 발짝 앞선 영국 교수 2명에게 돌아갔다.

김 교수의 사례에서 보듯 한국인 과학자 중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세계적 반열에 근접한 과학자가 없지 않다.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의 몇몇 스타 교수가 노벨상 꿈나무로 거론되지만 후속 연구에서 앞서는 수준이란 지적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진행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 9명이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왜 한국 사람들은 남이 한 연구를 따라만 하려고 하느냐”고 조언한다.

노벨 과학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아이디어에 수십 년간 땀과 혼을 불어넣고 정진한 끝에 빛을 볼 수 있는 영예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후속 연구와 응용 연구를 거쳐 인류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야 한다. 노벨상은 스승과 제자가 받는 경우가 많다. 수상자 절반 이상이 먼저 노벨상을 받았거나 나중에 수상자가 되는 유망한 과학자 밑에서 연구한 학생이나 공동연구자다.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국가나 연구기관에서는 첫 수상자를 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러나 한번 수상자가 나오면 후속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과학계의 분석이다. ‘정치’도 작용한다. 수상자가 후보 추천에 참여하는 만큼 WCU 사업으로 한국에 온 노벨 수상자들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육상에서 달리기가 기본인 것처럼 과학에선 순수 기초과학이 기본이고 이것이 뒷받침이 돼야 응용과학도 발전한다. 올해 교과부 예산·기금 44조6452억 원 중 연구개발(R&D) 규모는 8.5%(4조3558억 원)에 불과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과학계는 “정책결정권자 중에는 ‘개발이 끝난 기술을 사가지고 와서 더 발전시키면 되지 기초연구, 원천연구에 왜 많은 예산을 투자하느냐’는 발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계의 각성과 분발이다.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가 많지만 과학기술계 원로라는 인사들이 권력에 줄을 대 단체장 자리를 차지했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나고, 학회도 세력다툼으로 분열된 것이 현실이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이 맡은 것은 위상 강화의 의미도 있지만 과학계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다. 근면과 열정 하나로 오늘의 한국을 일군 것처럼 우리 과학계가 세계에 우뚝 서는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도록 분투하길 기대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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