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나는 ‘소셜’한다, 고로 존재한다

  • 동아일보

장재인 김지수가 부른 ‘신데렐라’를 듣게 된 건 페이스북 ‘친구’가 올려놓은 유튜브 동영상 덕분이다. 케이블 채널의 ‘슈퍼스타K2’가 화제인 줄은 진작 알았지만 ‘친구’가 “좋아요” 하고 추천하기 전까진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

출근길엔 트위터에서 ‘두산 다니는’ 박용만 회장이 “으라차차차 파이팅” 하고 요란하게 기지개 켜는 소리에 힘을 얻는다. 신문의 1면 톱기사 말고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 기사 재밌네요”라고 추천한 기사는 꼭 읽게 된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고급 레스토랑 메뉴를 반값에 즐기려고 소셜 쇼핑 사이트 ‘쿠팡’을 뒤적인다.

나처럼 소셜 미디어가 보라는 걸 보고, 읽으라는 걸 읽고, 사라는 걸 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해외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에 따르면 올 7월 한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는 2500만 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증가한 수치다. 세계적으로는 7월 한 달간 SNS 이용자가 9억450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23% 늘었다.

인터넷 역사상 처음으로 포르노를 제치고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활동으로 꼽힌 게 SNS 이용이란다. 유모차 구입에서 유언장 초안 작성까지 모든 일이 소셜 미디어에서 이뤄진다고 하니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소셜 미디어 속에서 살다 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요즘엔 단어 앞에 ‘소셜’을 붙이는 게 유행이다. 쇼핑도 ‘소셜 쇼핑’이고, 검색도 ‘소셜 검색’이며, 뉴스는 ‘소셜 뉴스’요 경제는 ‘소셜노믹스’다. ‘검색 지고 소셜 뜬다’는 전망 속에 네이버와 다음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소셜 서비스’를 공개했다.

소셜 신드롬은 ‘집단 지성’에서 ‘소셜 지성’의 시대로 옮겨감을 의미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불특정 다수에 의존하는 집단 지성보다는 내가 아는 소수의 사람에게 기대는 소셜 지성은 장점이 많다. SNS 사이트에서 오가는 정보는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 정보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기저귀 정보는 무작정 검색하기보다 SNS의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기저귀 정보를 인터넷에서 뒤적이지 않아도 되니 시간도 절약된다.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내용이어서 믿음도 간다. 영화배우 박중훈은 최근 한 일간지에 ‘팔로어가 늘어나니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 손이 떨린다’고 전했다.

소셜 미디어는 인맥을 관리하는 데도 효율적이다. 동창회나 계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지인들의 경조사를 앉아서 챙길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맞장구쳐야 하는 부담 없이 ‘트윗’을 읽고 친구의 ‘담벼락’을 구경할 수 있어 좋다. SNS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야말로 사회학에서 말하는 ‘준거집단’일 것이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정용진 부회장이 추천하는 서울 도산공원 카페에 가고, 김주환 연세대 교수가 올려놓은 음악을 들으며 스티브 잡스와 오프라 윈프리의 근황을 살핀다.

한상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소셜 미디어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우리가 사는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그 변화의 크기나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건 소셜 미디어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존재 이유를 바꾸어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는 소셜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이진영 인터넷뉴스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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