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9·19 합의’ 5년, 北의 핵 속임수와 남북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0일 03시 00분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가 북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내용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지 어제로 만 5년이다. 성명이 나올 때만 해도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는 희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진행된 북핵과 남북관계의 궤적은 당시 6자회담 당사국들의 합의를 무색하게 한다. 북의 핵 개발은 멈추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북은 금강산 관광객 사살, 개성공단 폐쇄 엄포, 남북 간 연락망 단절 등으로 위협하다가 급기야 무력 도발로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내부적으로는 3대 독재체제 세습을 진행 중이다.

북의 핵 포기 약속은 애당초 진정성이 없는 속임수에 불과했다. 일찍이 선군(先軍)정치를 표방하며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장담한 북 아닌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계좌 동결을 문제 삼아 1차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對北) 제재에는 2차 핵실험으로 맞섰다. 이제는 국제사회를 향해 핵무기 감축 회담을 하자며 공공연히 핵 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단계까지 나갔다.

그간 북의 행태로 미뤄 볼 때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개혁 개방을 통해 정상국가로 탈바꿈할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북은 최근 이산가족 상봉 제의, 쌀 지원 요청, 군사 실무회담 제의, 개성공단 기숙사 운영 검토 같은 유화 제스처를 쏟아내고 있다. 6자회담 재개도 거론한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경제난을 모면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의 태도 변화 운운하면서 대규모 쌀 지원과 대북정책의 수정, 천안함 출구전략을 주장하는 성급한 목소리가 나온다. 한때 완전 철수까지 거론했던 개성공단도 천안함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는 대북특사 얘기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기회가 오면 누구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은 100만 t의 군량미를 비축해 놓고도 주민의 배를 곯게 하면서 우리 쪽에 손을 내민다. 대관절 누구를 위한 대규모 쌀 지원인가. 군사 도발로 우리 장병들의 생명을 앗아가 놓고서도 사과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판이다. 왜 우리가 먼저 매달리듯 대북특사를 파견해야 하고 천안함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가. 9·19 공동성명 발표 5년, 천안함 사태 6개월의 교훈을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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