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향]나눔의 삶이 아름답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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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몸에 4억 원을 걸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TV에 나와서 천연덕스럽게 그걸 광고할 수 있을까. 설사 그런 이가 있다 해도 부자라기보다 명품에 코를 비비다 삶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품으로 휘감은 멀쩡한 허울 속 상처투성이의 황폐한 환상에 놀아날 필요는 없겠다. 나는 믿는다. 그렇게 정신 놓고 사는 사람도 어느 순간 정신 차리는 일이 있을 거라고.

돈이 아닌 마음의 나눔

부자란 통장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넣어 둔 이가 아니다. 부자는 늘 베풀 것이 있는 사람이다. 돈이 있으면서 베풀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인색한 사람이고 명품으로 휘감고 다니면서 베풀 줄 모르는 사람도 부자가 아니라 자아도취적인 이기적 사람이다. 인색할수록 낙천적이지 못하고 자아도취적일수록 자존감이 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눌 수 없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다. 언제나 마음이 비밀이다. 풍요로울 때는 세상 전체를 품다가도 인색할 때는 바늘 꽂을 자리 하나 없는 마음이.

정부가 나눔 문화 정착을 위해 발로 뛸 모양이다. 하반기에 나눔 정보를 구축해 기부 활성화를 꾀한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권력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을 할 때 진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좋은 일도 강요하면 나쁜 일이 된다. 마음이 없는데 나눔을 강요당해 억지로 기부하는 건 억지춘향이고 약탈이다. 그렇게 해서 찜찜한 마음으로 모인 돈이 따뜻하게 쓰일 리 없다. 기부의 생명은 자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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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람을 감동시키는 모든 생각은 머리 굴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몸에서, 삶에서 온다. 정부가 나눔을 진짜 아름다운 힘이라고 생각했다면 청문회에서 선거 때 도움을 줬던 사람, 권력에 보초나 설 사람이 아닌 나눔의 힘으로 살아온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핵심부에 흐뭇하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상주한다면 온기가 자연스레 흐르지 않겠는가. 그것이 나눔의 진정성이다.

세계적인 부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모여 기부문화의 확산을 이야기할 때 따뜻한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돈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 자발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이 모았으니 베푸는 게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모으면 모을수록 2% 부족하다고, 그러니 조금 더 모아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이 돈의 속성이다. 알지 않는가. 월급에서 1%를 떼어 좋은 일에 쓰자고 할 때 그 1%는 너무나도 크지만 나머지 99%의 월급은 언제나 쥐꼬리처럼 느끼는 이치를.

많이 벌어야만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나는 평생 나누지 못한다.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돈 돈 돈 소리에 자존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꼭 돈으로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을 나눌 수도 있고, 시선을 나눌 수도 있고, 생각을 나눌 수도 있고, 마음을 나눌 수도 있다.

세상의 그늘 향한 교감이란

어쩌면 나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태도인지 모르겠다. 높으신 어른들이 명절 때 보육원 방문하고 양로원 방문하면서 증명사진을 찍는 데만 관심을 가지면 받는 사람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주는 자의 우월한 시선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건 나누는 일이 아니라 우월감을 즐기는 일이다. 남의 것을 받아 사는 사람의 마음에 내려앉지 않으면 줘도 주는 게 아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돈이 아니라 생인데 그것을 전혀 관계없는 줄 알았던 세상의 그늘을 위해 쓰는 사람의 생은 따뜻하다. 거기선 영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교감이 일어난다. 주는 쪽은 주면서 받고, 받는 쪽은 받으면서 주는, 그런 교감! 그런 교감엔 초라한 게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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