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창우]공직자 위장전입은 문제삼지 말자?

  • 동아일보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진 고위공직자가 인사청문회를 속속 통과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사실을 시인하고 통과했으며 장관 국세청장 경찰청장 내정자도 이 문제가 걸린 청문회를 앞두고 있지만 위장전입은 이제 인정하고 사죄하면 공직자 임명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청와대도 이 문제가 걸려 있는 후보자를 고위공직자로 내정한 것을 보면 위장전입은 인선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총리 후보자가 이 문제로 낙마한 사실과 견주어보면 이 문제만큼은 법치에서 후퇴했다. 최근 10년간 위장전입으로 처벌받은 5000명이 넘는 국민에게 정부나 국회는 고위공직자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라고 이중적인 잣대로 설명할 것인가. 위장전입은 형식적으로 보면 살지도 않는 곳에 살고 있다고 주민등록을 허위 신고하는 단순한 문제로 볼 수 있지만 권리 취득과 연관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다른 곳에 주민등록을 옮겨 실제 거주자에게만 청약자격을 주는 주택을 분양받는다면 차순위로 탈락한 청약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서 주민등록을 등재한 거주자만 취득할 수 있는 토지를 위장전입자가 취득하면 투기를 방지하려는 토지거래허가제의 근간이 무너진다. 불과 몇 표 차로 당선이 갈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자 쪽에 투표한 10여 명의 주민등록 허위 전입자가 있다면 국회의원 당선자가 뒤바뀐다. 자녀를 좋은 학군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살지도 않는 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입학시키는 관행을 방치한다면 학군제 교육제도는 퇴색된다. 어느 하나도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은 자녀 교육과 관련된 것은 문제 삼지 않지만 재산 증식을 위한 것은 불가하다고 보도되고 있으나 고위공직자가 정부 정책을 위반하는 행위를 묵인하는 셈이니 모순이다. 고위공직자의 도덕 불감증을 키워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기준이라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위장전입한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임명을 거부해야 하나 그러기도 어려워 보인다.

위장전입을 처벌할지의 문제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동의나 심사 문제는 별개다.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자를 처벌하게 되어 있는 이상 형사적으로 문제될 경우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처벌에 관해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개재될 여지가 없다. 아무리 고위공직자라도 법을 위반한 경우 수사의 단서가 있다면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법은 엄연히 살아 있으며 처벌에 신분의 차이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동의와 심사 문제다. 위장전입한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가 쉽게 임명에 동의하거나 적격 의견을 내는 일이 문제다. 위장전입 의혹을 받는 고위공직 후보자가 점차 많아지는 현상은 법률에서 동의나 심사에 관한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인사청문위원회에 참여한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사에 맡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장전입한 후보자를 실정법으로 따지자면 처벌할 수 있지만 임명에 대한 동의나 심사는 국회 차원의 문제로 국회의 결정에 따르도록 정하고 있다.

국회가 위장전입한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나 심사에서 사안의 무겁고 가벼움을 따지지 않고 위장전입 자체를 가볍게 여겨 동의한다면 청문회의 취지가 퇴색되고 법치 수준이 떨어지고 국민의 준법정신을 해이하게 만든다. 후보자의 실력과 인품을 안타깝게 여기지 말고 법을 더 존중해야 한다. 국회는 법을 지키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서는 동의나 심사를 거절할 수 있는 과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창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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