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난 아직 익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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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처음엔 먼지인 줄 알았다. 어느 날부턴가 눈에 날파리 같은 것이 오락가락 보이더니 눈을 깜박거려 보고 안약을 넣어도 떠다니는 것은 그대로 남아있다. 잠시 그러다 말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증세는 그대로다. 안과를 찾아가니 ‘비문증’이라고 한다. 나이 들어 생기는 일종의 노화현상이라 별다른 치료법은 없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이다. 심리적 불편함은 크지만 시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니 그냥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미리 알면 재미없는 세상도 있는데

쉰 중반에 접어든 선배의 하소연을 들으며 남의 일 같지 않다 싶던 나에게도 비슷한 증세가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날파리증’이라는 색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병이다. 말이 쉽지 눈만 뜨면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고역이다. 책 볼 때 무심코 이물질을 털어내려 손을 휘젓거나, 시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조금이라도 덜 성가신 독서방법을 찾으려 애를 쓴다. 한데 눈에 이어 귀까지 말썽이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다행히 가벼운 염증이란다. 의사선생님은 사람들이 괜히 귀 청소한다며 면봉 등으로 열심히 후벼대다 없던 병도 만든다며 제발 귀를 좀 내버려 두라고 한 소리 했다. 과도한 청결보다 귀에는 귀지가 어느 정도 있어야 진정 건강한 귀라는 조언을 덧붙이면서.

몸에 찾아든 변화에 괜히 수선 떨지 말고 감싸 안으라는 처방 아닌 처방전을 받고 나니 책에서 읽은 ‘동물들은 받아들일 줄 알지만 인간들은 기대만 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가령, 어떤 토끼도 ‘오늘 아침에는 해가 쨍쨍해야 호수에서 신나게 놀 텐데’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끼는 그냥 토끼라서 행복할 뿐인데 사람만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대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해 고통을 자초한다는 얘기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심신의 기능이 점차 어눌해지는 것은 스트레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적당한 걱정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자양분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만큼 세상일에 덜 참견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자고. 이건 분명 나의 새로운 모습이지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노랫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심하고 방황할 때 순리에 맡겨 ‘냅두는’ 것도 때론 현명한 지혜라는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걱정이란 게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것인가. 흘러가는 대로 수굿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이만하면 됐다는 겸손한 만족과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힌 헛된 욕심을 구별하는 지혜는 아직도 저만치 멀리 있으니…. 순리와 억지의 시간을 오가며 몸으로 그 차이를 배우는 체득의 과정이 곧 평범한 우리네 삶이지 싶다.

순리대로 내버려 두며 살았으면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9월 중순까지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미리부터 알려준다. 몸의 변화도, 무더위도 겁내거나 싸워야 할 적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잠시나마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자각하는 연습을 해본다. 그래도 콧잔등에는 여전히 땀이 흐르고, 나는 언제쯤이면 인생이 불쑥 내미는 낯선 과제를 그때마다 평온한 낯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까, 궁금해한다. 과학의 진화는 마음도 새것으로 바꿔줄까.

‘그렇다. 나는 아직/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익숙지 않다./…/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삶인지,/따뜻한 삶이란 무슨 뜻인지,/나는 모두 익숙지 않다./…/어느 빈 땅에 벗고 나서야/세상의 만사가 환히 보이고/웃고 포기하는 일이 편안해질까.’

(마종기의 ‘익숙지 않다’)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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