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쓰기 전인 1920년대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 그는 60대에 불과했고 생활은 꽤 현대적이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방문 뉴스 릴(reel)은 물론, 자택 부근 호수에서 물새를 사냥하는 모습까지 필름으로 남았다. 그런데 왜 ‘옛날사람’이라고 했을까.
푸치니가 태어난 19세기 중반 그의 고향 토스카나는 중세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기 작가들이 구할 수 있는 그의 청소년기 사진은 한 장뿐이다. 그의 생애는 주로 편지에 의해 재구성된다. 누나들이 보낸 염려의 편지는 그의 애정행각을 드러낸다. 후원자와 주고받은 편지들에는 당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성찰이 나타난다.
푸치니보다 140세 어린 내 아이의 친구가 위대한 인물이 된다면 후세는 그 삶을 어떻게 추적할까. 기자의 선친은 일제강점기에 카메라를 소유했던 사진 애호가였지만 기자 형제들의 사진은 앨범 3권 분량을 넘지 않는다. 반면 아직 초등학생인 내 아이의 성장 과정은 20여 장의 DVD에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면 일상을 고화질(HD)로 촬영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은 그 자체로 일상이 될 것이다. 오늘날 ‘트위터’로 대표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동영상 기반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런 서비스가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은 폭증하고, 수십 초 분량의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140자의 단문을 쓰는 것보다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 동영상은 언제까지 보존될까. 최근 미국 정보기술(IT) 전문 미디어 ‘와이어드’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트위터 서비스에 올라오는 모든 정보를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개인 블로그의 정보가 사후 소멸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토론도 활발하다. 앞으로 블로그나 소셜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특별한 예외사항이 없는 한 정보를 영구 보존한다는 약관을 제공할 것이다.
웹을 기반으로 한 영상정보의 양과 질도 풍성해진다.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는 이미 HD 기반으로 운영된다. ‘폰카’가 3차원(3D) 기능을 갖게 될 날도 눈앞에 왔다. 수많은 개인들이 촬영한 세계 곳곳의 3D 화면이 웹 공간에 차곡차곡 쌓여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꺼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인류가 엄청난 정보량의 ‘과거’를 소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위인전은 3D HD로 기록된 엄청난 양의 동영상을 기반으로 구성될 것이다. 주요 순간의 영상들이 실물처럼 후세 사람들 앞에 재현될 것이다. 개인 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변화시켜온 통신혁명이 과거와 대화하는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왜 그것이 중요한가. 인간은 기억에 의해 자신을 정의하고 자존감을 형성하며 도전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일기와 편지, 몇 장의 사진에 덧입힌 기억으로 과거를 구성해온 과거의 인류와, 어디서나 불러낼 수 있는 고화질 영상으로 과거를 구성한 미래의 인류는 자아에 대한 정의부터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두려움을 갖는 것이 섣부를 수는 있으나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감각의 과잉 속에서 숙고와 반성은 줄어들고 있는 인류의 병폐가 개인적 자아의 정립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인류의 정체성마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모습으로 바꾸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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