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찬제]비극을 삼켜 恨의 응어리를 토해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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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욕된 생각을 씻고
평화에의 소망 다시 응시


평화를 위한 진혼곡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 그대로 자유인의 초상이었다. 실제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그는 자유의 극한 영역을 추구하고 탐문했다. 그의 자유로움이 사회적 종교적 통념을 넘어 섰다고 판단한 그리스 정교회에 의해 파문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육신은 죽어서도 그리스 본토에 안식처를 마련할 수 없었다.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묘비의 뒷면에는 '평화'를 지시하는 세계어들이 새겨져 있다.

물론 자유와 평화에의 갈망은 카잔차키스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 모든 인간, 아니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소망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자유보다는 억압이, 평화보다는 전쟁이나 폭력적 상황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 멀리 보지 않고 지난 20세기-한나 아렌트가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만을 되돌아보더라도 우리는 세계와 인간의 현실에 대해 충분한 실감을 얻을 수 있다. '폭력으로부터의 자유'에서 J. 크리슈나무르티가 보인 이런 고뇌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폭력 사회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인간인 우리는 폭력에 물들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문화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것, 우리의 투쟁의 결과, 우리의 고통의 부산물이요, 동시에 가공할 만한 우리의 잔인성이 빚어낸 결과이다. 여기서 가장 절박한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이같은 가공할 만한 폭력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길이 우리 안에 있을까?"

평화를 깨뜨리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하나가 전쟁이다. 흔히 우리는 전쟁이란 가혹한 사건을 통해 결코 절대성에 미치지 못할 인간의 유한성을 확인하곤 한다.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전쟁의 상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단순함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전쟁 이후 60년의 한반도의 삶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시간들로 점철되었다. 그러기에 문학의 상상력에서도 전쟁의 기억과 애도는 늘 중심 주제의 하나였다. 상처를 위무하고 평화에의 이상을 지향하기 위해 넉넉하게 감싸 안으려는 노력이야말로 이 땅 문학인들의 주요한 소명이었다.

일찍이 시인 구상은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초토의 시·8'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비록 어제까지 총을 겨누고 싸웠지만, 죽음을 애도하고 망자를 위무하는 이 시의 서정이야말로 문학하는 마음의 바탕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체험 세대들이 주를 이루었던 1950년대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후유증을 고통스럽게 환기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최인훈의 '광장'을 필두로 하여 1960년대에는 분단 상황과 그 이데올로기를 관념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유년기에 전쟁을 겪은 1970년대 작가들은 김원일의 '어둠의 혼'이나 윤흥길의 '장마'처럼 유년기의 시선으로 전쟁을 재성찰하면서 전쟁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넘어서려 했다. 전쟁 미체험 세대인 1980년대 임철우 등은 역사적 이성으로 투시하고 인문적 상상력으로 한국전쟁을 재조명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한국문학은 전쟁 상흔을 치유하면서 휴머니즘과 평화를 회복하고 일그러진 정신사를 올곧게 세우려는 상상적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맺힌 한을 풀고, 대치를 넘어 화해로, 나아가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런 면에서 전쟁과 관련한 두 편의 해한(解恨)의 이야기가 주목에 값한다. 황석영의 '손님'(2001)과 이청준의 '흰옷'(1994)이 그것이다.
일찍이 '한씨연대기'를 통해 분단시대의 고통을 매우 극적으로 형상화했던 황석영의 '손님'은 6·25전쟁 중에 있었던 황해도 신천 지방의 양민 학살 사건을 조명하면서 분단 상황의 어제와 오늘을 넓고 깊은 시선으로 성찰한 소설이다. 작가가 원적지인 신천을 방북 기간 중에 방문하여 구상한 작품이다. 수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된 이 사건은 피카소의 그림 '한국 전쟁의 대학살'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거니와, 작가 황석영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대결과 갈등에서 빚어진 비극으로 이 사건을 파악한다. 말하자면 대결과 참상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황석영은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탐문함과 동시에 그 사건으로 죽어간 원령들을 천도하는 진혼굿 형식의 이야기를 짠다. '부정풀이-신을 받음-저승사자-대내림-맑은 혼-베 가르기-생명돋음-시왕-길 가르기-옷 태우기-넋반-뒤풀이' 등으로 엮어진 굿판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역동적으로 대화하는 말풀이를 통해 한풀이를 시도한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관찰과 회상, 체험과 기억, 실제와 환상을 넘나드는 환상 기제들을 통해 '악몽의 즉물적 잔재'들이 다각적으로 조명되며 풀이의 넉넉한 지평을 응시한다.

화해할 수 없었던 참극을 함께 치뤘던 당사자들이지만, 그들은 영혼의 대화를 통해서, 그 말풀이로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련의 영혼들이 맺힌 원한을 풀어내고 허심탄회하게 떠난다. 그 해한의 장면은 비단 신천 사건의 매듭 풀이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분단 현실에서 어제까지 맺혔던 한의 응어리들을 풀어내고 오늘 이후부터 어떻게 다시 건강하게 새로운 출발과 모색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까지 함축한다. 이를 위해 황석영은 한반도 전역에 큰 울림으로 퍼질 수 있는 큰 굿판을 신천 땅을 무대로 펼쳤던 것이다.

'손님'보다 앞서 발표된 이청준의 '흰옷'도 인상적인 해한의 서사다. 대립과 대결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용서와 화해, 함께 아파하기, 감싸안기 등을 강조했던 것이 이청준 후기 소설의 중심 영역이거니와, '흰옷'에서 이청준은 해방기의 혼돈과 전쟁기의 마성적 폭력으로 인해 일그러진 우리네 정신사를 바로 세우려는 예지를 보인다. 남도지방의 버꾸놀이가 전쟁기의 악몽을 거치면서 예전 같은 무한포용의 신명기를 잃고 거친 쇳소리로 변해버린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로운 영혼들이 허심탄회하게 어울릴 수 있었던 예전의 신명을 회복하기 위한 진혼을 시도한다.

소설 속에서 영매자(靈媒者)는 간절하게 축원한다. 이 땅에서 벌어진 부정하고 불순한 것들을 씻어내고,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둡고 더럽고 부정하고 욕된 생각들을 모조리 깨끗이 씻어달라고 말이다. "헛된 이념과 사상의 사슬, 대립과 미움과 원한과 복수의 사슬, 거짓과 속임수와 미망의 사슬"을 끊어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묵은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소망스런 꿈을 펼쳐 보인다.

"망자들은 망자의 길을 가게하고, 생자들은 제 생자다운 세월을 살게 하고……. 그리고 저 아침풀잎 같은 고운 아이들에겐 저들에게 더 잘 맞는 저들의 노래 속에 소복보다 더 고운 옷을 입고 고운 춤을 추게 하고, 그래서 이쪽이고 저쪽이고 이제는 이 산하가 온통 저들의 행복스런 춤판이 되게 하고…. 저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소망이요, 꿈이니께. 저들이 이젠 이 땅의 내일의 모습이니께…. 그러니 참으로 고맙고 부끄럽구나. 그동안도 저들은 저렇듯 힘차고 곱게 자라주고 있었으니. 우리의 꿈은 옛날에 실패했으되, 그 꿈이 저들에게서 저렇듯 다시 스스로 내일의 문을 열어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져가고 있으니…."(이청준, '흰옷')

전쟁으로 인해 많은 꿈들이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났다. 이청준이나 황석영을 비롯한 이 땅의 많은 문학인들은 더 이상 소망스런 꿈들이 악몽으로 돌변하지 않기를 간구해 왔다. 자유와 사랑으로 신명 지피는 평화에의 소망을 새삼 응시해 본다.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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