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실은 호화로운 게 좋을까 소박한 게 좋을까. 오래전에 개업한 동료가 사무실은 무리해서라도 번듯하게 꾸미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래야 의뢰인들이 더 신뢰하고 수임료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와 달리 생각한다고 들었다. 호화로운 사무실을 보면 그 유지를 위해 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고 생각해서 외려 마다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십수 년 전 미국 연수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던 이웃 할머니와 한국식당에 간 일이 생각난다. 그 식당은 이른바 ‘서비스’가 많기로 유명했다. 반찬을 다 먹기도 전에 다시 채워주었고, 주문한 것 외의 메뉴도 더 주었다. 주는 걸 다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 식당 인심이 좋다며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왜 자기가 먹고 싶지 않은데 자꾸 더 주느냐며 난색을 표시했다. 공짜라도 필요치 않은 건 사양한다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공약 인심처럼 후한 것이 없지만 뻔히 알고도 속는 것이 의례가 됐다. 금품이나 식사 제공 같은 혼탁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바람직하다. 공짜가 엄청난 과태료를 동반한다는 것이 잘 홍보된 듯하다. 그 대신 이번 선거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소음과 시각공해다.
장충단공원의 유세나 공설운동장의 합동연설 같은 낭만은 이제 없다. 그 대신에 요란한 확성기와 단체율동, 건물과 도로를 덮어버리는 현수막의 향연이다.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무차별 명함세례가 기다린다. 받자마자 버리는 이도 많다. 그야말로 넘침이 지나치다. 낭비다. 그 모든 장비들과 도구들이 다 돈이 아닌가. 옷을 맞추어 입고 차를 단장하고 운동원들을 고용하고 결국은 모든 것이 비용이다. 당선되면 저 돈을 다 어디서 메우나 지레 걱정이다.
게다가 소음은 정도를 넘었다. 오죽하면 시끄럽다고 주민과 선거운동원 간에 폭력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차량, 그 안에서의 춤과 노래, 이것이 선거인가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남들의 생활 방해에 무심한 이가 자치단체를 맡게 된다면 또 많은 이들의 평온과 일상을 마음대로 깨지 않을까 두렵기조차 하다.
이번 지방선거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 많은 이를 한꺼번에 뽑는다는 것이다. 가히 선거의 홍수다. 시의원, 구의원이 꼭 필요한 거냐고 묻는 이도 많다. 교육감에 이르러서는 과연 우리가 투표를 해야만 하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대세다. 하지만 뽑는다.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몰라도 한번 생긴 제도는 쉽게 고쳐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선거 때면 혼란스럽다느니,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왜 투표해야 하냐고들 하다가도, 그래서 선출제도를 바꾸겠다고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말살이니, 제도의 개악(改惡)이니 하고 들고 일어설 것이 분명하다. 국정감사가 낭비적 요소가 많음을 다 알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정치는 진흙탕’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 말만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지 실제는 좋아하는 것 같다. 정치인들을 가장 불신한다면서도 무슨 모임에라도 가면 으레 정치인 소개가 우선이다. 공직자도 그 다음이요, 기업인은 비용을 제공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된다. 우리 사회에 많고도 많은 것이 모임과 단체다. 그들이 대개는 정치적 관심을 표방한다. 그중에는 비슷비슷한 성격의 포럼, 연대, 연합도 넘친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리 모두들 각자 행동을 할 뿐 취지가 유사한 단체와도 잘 연대하지 않는다. 그 많은 세미나와 포럼이 있지만 실제 정책과 제도로 연결되는지는 미지수다. 그저 모여서 정치인들은 초장에 인사나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남은 이들도 밥 먹고, 명함 돌리고 발표자 이야기 건성건성 듣다가 하나둘 사라진다. 게다가 회비를 내라는 회의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도 않는다. 공짜여야 참석률이 높다.
궐기나 규탄대회는 많지만 실제 아이디어를 내거나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 돕겠다는 단체는 많지 않다. 너도나도 생각은 많다. 비판의식도 강하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는 참여에는 인색하다. 성토하고 비난하고는 각자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놀러 가기 바쁘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출근시간에 단체로 휴지를 줍는 은행원들의 활동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에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노신사가 멋지다.
정치는 그래도 중요하다. 혼란스러워도 선거는 제대로 해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후보자들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나중에 나무라기만 하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그러다가는 “잘 모르고 찍는 유권자들이 고맙다”고 생각하는 세력에 번번이 이용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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