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지 천국’은 유럽의 환상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 기치 아래 정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유럽의 복지모델이 재정위기라는 복병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에서 출발해 스페인으로 옮겨간 재정위기에 놀란 유럽 각국은 급여감축, 은퇴연령 상향조정, 노동시간 연장, 건강보험 및 연금 축소 등으로 복지혜택을 줄이기에 바쁘다. 노조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지금 같은 복지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이 재정위기를 맞은 가장 큰 요인은 고령화다. 유럽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50년까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1950년대 경제활동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에는 1.3명이 1명을 부양한다. 유럽연합(EU)의 공공복지 지출은 200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1%로 미국(15.9%)보다 훨씬 높다. 인구는 고령화하고 출산율과 노동생산성이 동시에 떨어지다 보니 기업들은 공장을 아시아로 이전했고 이것이 다시 실업률을 높이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전후에 유럽이 사회복지를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냉전체제하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 핵우산으로 인해 국방비 부담이 적었고 유럽식 계획경제가 나름대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유럽 각국은 고율의 세금을 거둬 복지체계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유럽식 경제사회 모델이 한계에 부닥쳤는데도 성장의 뒷받침 없이 ‘복지 천국’을 구가했다. 국민은 조기은퇴, 관대한 실업급여, 무상의료를 당연시하면서 ‘누가 돈을 내느냐’는 따지지 않았다.

최근 출범한 영국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60억 파운드(약 10조5000억 원)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 신규채용을 중지해 30만∼70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없앨 계획이다. 유럽에서 재정 형편이 가장 좋다는 독일도 칼을 빼들었다. 내년부터 매년 100억 유로(약 15조 원)의 예산을 절감하고 세금감면, 지방교부금, 복지수당을 축소해 나가기로 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유럽위기의 해결책은 ‘성장’뿐이라고 그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강조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도 재정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경쟁력과 성장률을 높여야만 한다. 이상향으로 칭송됐던 유럽 사회복지 모델도 재정위기 앞에서는 모래성이었다. 성장 없는 분배는 환상임을 최근 유럽사태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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