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전도사로 유명한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2006년 17대 국회에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청원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및 각계각층 인사 158명의 서명을 받았다. 법안은 담배의 제조·매매는 물론이고 수출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담배로 인한 폐암 발병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극단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만들어 국민에게 파는 것은 사기나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실현되지 못하고 17대 국회가 종료하면서 폐기됐다.
현실적으로 기호품인 담배를 전면 금지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책임 아래 기호품을 즐기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청소년이라면 다르다. 담뱃갑에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 당신 자녀의 건강을 해칩니다’라는 경고문을 붙여놓고 있다.
최근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제한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심야 접속 제한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부처마다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게임 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게임 산업 지속성장 기반 강화를 위한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 대책’이란 긴 이름의 정책을 발표했다. 심야 게임과 관련해선 밤 12시 이후 청소년이 유명 온라인게임에 신규 접속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밤 12시 이전에 접속했을 때는 그대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실상 심야 게임을 허용한 것이다.
게임업계에선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제한에 대해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딱지를 붙인 모양이다. 이는 갈라파고스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란 점에서 전체적 흐름과 동떨어져 특정 사안을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청소년 심야 게임 제한이 과연 게임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규제일까. 청소년의 수면까지 빼앗아가며 돈을 벌어야만 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청소년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도외시하는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만 9∼19세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자는 103만 명. 해당 연령 인구 723만 명의 14.3%이고 성인 중독자 6.3%의 2배에 이른다.
건전한 시민으로 자라야 할 청소년들이 밤샘 게임을 하며 시간과 체력을 낭비했을 때의 비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인터넷과 온라인게임 중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최소 8000억 원에서 2조2000억 원에 달한다. 숫자로 따지지 않더라도 수면 부족, 시력 저하, 건강 악화, 학교 공부 및 생활 파괴 등 수많은 부작용이 존재한다.
특히 한부모 가정 등 사회취약계층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관리를 받지 못하고 방임되면서 게임 중독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한부모 가정 자녀의 중독률은 22.3%로 청소년 평균보다 8%포인트나 높다.
게임 중독은 개인의 의지 부족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질병이다. 맹광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인터넷 중독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뇌를 손상시키고 자제력을 잃게 해 몸이 망가져도 미처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며 “어릴 때 노출될수록 중독의 예후는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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