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직원 30여 명은 요즘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다. 직원들이 난데없이 개를 키우게 된 것은 구제역 때문에 축산과학원에 모든 가축의 반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올해 초 축산과학원은 반려동물 연구의 일환으로 ‘개 사료 국산화 연구’를 위해 개 30마리를 구입하고 견사까지 마련했지만 구제역이 터지자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한 마리씩 개를 맡긴 것. 축산과학원 관계자는 “구제역이 진정된 뒤에나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1월에 이어 4월에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국내 가축 연구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국내 가축 관련 연구를 총괄하는 과학원은 ‘전시(戰時)상황’을 방불케 한다. 후문을 폐쇄하고 하루 두 차례 강도 높은 소독을 실시하는 한편 연구원의 축산 농가 방문도 자유롭지 않다. 과학원 측은 “만에 하나 구제역이 과학원 시험장까지 뚫고 들어와 시험 대상 가축에게 옮아 연구가 중단될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나다”고 밝혔다.
국가 종축(種畜)사업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우 보증씨수소가 있는 충남 서산의 농협한우개량사업소와 젖소 보증씨수소가 있는 경기 고양의 농협젖소개량사업소는 구제역의 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축산원 측은 “만약 서산의 사업소에 구제역이 발생해 보증씨수소가 도살 처분된다면 우리나라에서 1년 6개월 동안은 한우 암소 인공수정이 올스톱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웃한 보령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됐을 때는 서산 사업소 전체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가 종축을 분산 사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와 정치권의 호응은 없다. 2000년 첫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제기된 국가 종축 분산 사육사업은 당시 정부와 정치권의 협조로 일부 예산까지 따냈지만, 이후 구제역이 한동안 발생하지 않으면서 예산도 전액 사라졌다. 관련 논의가 흐지부지됐음은 물론이다.
올해 들어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던 기간은 3주에 불과했다. 설사 운 좋게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고 종식되더라고 다시 발생할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종축 관련 논의를 다시금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우 보증씨수소를 한 마리 키우는 데는 약 6년의 기간과 10억 원의 예산이 든다.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이번만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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