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기웅]北은 北… 탈북자 감싸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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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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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려던 북한 간첩 2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불순분자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은 일찍이 제기됐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대규모의 동독 탈주자가 서독으로 넘어오자 서독 정부는 국가안보 위해세력의 잠입 여부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동독의 비밀경찰은 물론이고 당시에 존재했던 소련의 KGB 요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첩보원까지도 대열 속에 있다가 발각됐다.

이렇게 보면 탈북자의 대열 속에 위장 북한 간첩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불순세력이 가담할 개연성도 있다. 국가적 대책을 시급하고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함은 당연하다. 대책의 일환으로 국내에 안착하려는 탈북자에 대한 심사 강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국가안보와 국민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문제는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넘어온 선량한 탈북자에게까지 편견 또는 의심의 시선이 짙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위장간첩 체포 소식에 탈북자들의 가슴앓이는 시작됐다. 심리적, 정서적 압박감이 더욱 커져 가뜩이나 어려운 정착생활은 더욱 힘겨워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선량한 탈북자에게 또 다른 삶의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의 문을 두드릴 북한 주민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도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계기가 되도록 만드는 지혜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제 이들은 대한민국이 지켜줘야 할 우리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는 통일의 전령일 수 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꿈꿔 온 삶을 현실화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선을 넘은 순간을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 여기며 가슴 벅차 할 것이다. 바로 이들이 북한 땅에 남은 2400만 주민에게는 삶의 희망이 된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오직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내려온 그들이 꿈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국내 정착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가해질지 모를 북한의 위협에 대한 안전문제까지 더욱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고자 번뇌하고 있을 북한의 모든 주민에게 삶의 희망을,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2만 명도 채 되지 않는 탈북자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정착하도록 도와주는 마음과 제도가 우리에게 없다면 남북통일은 깨끗하게 단념하는 편이 옳다. 한 줌의 탈북자와의 작은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한반도의 통일을 꿈꿀 수 있을까?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은 북한 주민의 결정과 행동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확인하는 순간 통일의 대열에 나설 것이다. 그런 결단의 시간으로 이끄는, 촉진하는 동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탈북자일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더하여 이번 위장간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선량한 탈북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대한민국이란 희망의 문을 두드릴 북한 주민이 위축되지 않도록 감성 어린 정부의 정책이 요구된다. 탈북자가 국내에서 체험한 소수의 불량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삐딱하게 보아서는 안 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선량한 대다수 탈북자를 따뜻하게 포용해야 할 책임이 요구된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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