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피겨스케이팅 시청 감각만도 못한 국제화

“대단해요, 멋집니다. 참 예쁘죠?” “(경쟁 선수에게) 회전수가 모자라는군요. 감점됐네요.” 겨울올림픽 당시 누리꾼들의 비판 대상이 됐던 피겨스케이팅 해설 사례들이다. 이름 하여 ‘내용 없는 해설’ 혹은 ‘편파해설, 애국해설’로 지적받은 부분이다. 우리 누리꾼들은 이제 스포츠 중계도 우리 것만을 보지는 않는다. 세계 각국 중계방송의 카메라 앵글과 해설을 자막과 함께 바로 인터넷에 올린다. 많은 이가 이를 비교하며 외국 방송의 화면이 선수들의 표정과 기술, 전체적인 수행의 아름다움을 잘 잡아내는 것을 확인한다. 그 해설을 통해 스케이팅의 감상 포인트를 알게 되고, 왜 가산점과 감점을 받게 되는지도 정확히 이해한다. 자연스레 우리 중계와 해설의 부족함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국제화는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우리의 생활이 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요즘 우리의 국제화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 국내에서도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린다. 외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회의에도 빈번하게 참여한다. 많은 학생이 유엔이나 국제기구 진출의 꿈을 키운다. 영어마을이니, 경제자유구역이니 하는 것들도 국제화의 바람을 타고 유행처럼 확대됐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국제화 분위기는 외형에 치우친 면이 있어 외려 스케이팅 중계를 보는 국제적 감각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아쉬울 때가 있다. 예전에 빈에 여행 갔을 때 함께 간 친구의 사진을 찍어 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사진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잡힌 것을 보고는 백인들을 배경으로 다시 찍어 달라고 했다. 그래야 빈에서 찍은 사진이 된다면서. 물론 그때는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지만 우리의 국제화에는 혹시 이러한 인식이 깔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뉴욕 근무만 고집하는 유엔 진출

젊은이들의 유엔 진출에 대한 관심과 관련해 일선 관계자들은 그들이 주로 뉴욕의 유엔본부에만 근무하려고 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국제기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는 국제 문제를 향한 관심과 기여가 바탕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 기여는 저개발국이나 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시야를 넓히며 유엔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유엔 산하 지역사무소 근무를 마다하지 않을 때 그것이 경력이 되고 나중에 책임자급으로 유엔본부로 가게 되거나 국제기구에서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모두들 처음부터 뉴욕 근무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나 국제화 세미나라는 것도 회의의 내용이 얼마나 국제화에 기여하는가보다는 외국인 교수나 저명인사가 참여하는지에 따라 국제화 예산이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별 특별한 내용을 들을 것이 없어도 구색 갖추기용 외국인 학자를 초빙하느라 비싼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한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내세운 경제자유구역도 알고 보면 외국 자본이나 투자시설은 없고 아파트만 지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흔히 듣는다. 그 많은 영어마을은 과연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떠한지 궁금하다.

사실 국제회의나 국제기구 참여를 잘 활용하면 올림픽 못지않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면이 있다. 판사 시절 세계여성법관회의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그 성과는 성대하고 화려한 외양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국제회의 하면 흔히들 영어 잘하는 것을 우선으로 치는데 물론 언어도 중요하지만 외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콘텐츠였다. 우리는 우리끼리 경쟁하느라 바빠서인지 국제적인 이슈나 관심사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사실 한국말로도 아는 것과 할 말이 많아야 영어로도 설득할 수 있는 것이지 단지 영어만 할 줄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국제회의 內實과 콘텐츠 중요

우리의 회의 진행은 아직도 준비해온 개회사, 축사 원고를 줄줄이 읽는 방식으로 경직돼 있다. 리셉션 같은 자유로운 자리에서는 고위 공직자들도 여유와 유머를 가지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설을 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는 유난히 외국 손님들에게 음식 접대가 후하고 선물을 잔뜩 안긴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건 좋은 관행이기도 하지만 회의의 목적과 내용이 우선이다. 그들은 회의 기간 구체적 의안을 가지고 치밀하게 진행했다. 회의장소도 크고 화려한 곳보다는 역사와 의미가 있는 곳, 오붓한 사교의 분위기를 중시했고 식사는 소박했다. 친교 방법에서도 무조건 명함을 건네기보다는 개인적 친밀감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의 주제에 맞는 알찬 내용으로 참여하는 것이 관심과 호의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국제화는 결국 내실화(內實化)다. 국제사회를 향한 적극적 참여이고 자연스러운 어울림이며 그것을 통해 얻어내는 실질적 위상정립일 것이다.

김영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yhk888@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