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의 마음은 요즘 무겁다. 돌연, 두 동강 나 침몰한 천안함 사건 때문이다. 영화 ‘친구’로 이름난 그는 얼마 전까지 눈코 뜰 새 없었다. 제2차 연평해전 영화 제작 준비로 그랬다. 국방부와 해군의 지원과 촬영허가도 받아냈다. 두 달 뒤 촬영에 들어가면 내년 2월 영화 ‘아름다운 그들’(가제)이 개봉한다. 제작 일정엔 차질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천근같다. 천안함 희생자와 그 가족들 때문이다.
영화로 부활하는 연평해전 영웅들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일어났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출동한 참수리 357호는 경고방송만 했다. 느슨한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그때 북한군이 갑자기 포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기습을 당한 해군은 불굴의 투혼으로 맞섰다. 18분간 교전 끝에 6명이 숨졌다. 참수리는 예인 도중 침몰했다. 눈물겨운 그날의 현장을 스크린에 옮기는 사전 작업을 그는 해왔다.
그날을 곽 감독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 우리 사회는 들떠 있었다. 그날은 한국이 터키와 3, 4위전을 벌인 날이었다. 마침 그가 만든 ‘챔피언’이 개봉한 날이기도 했다. 첫 회 상영 직후 북한이 기습도발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교전현장엔 해군 고속정 6척과 초계함 2척이 배치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군은 햇볕정책과 전면전 우려 때문에 적극 대응은 못 했다.
3년 뒤 영화 ‘태풍’을 만들 때였다. 곽 감독은 해군 장교 강세종(주인공·이정재 분)이 출동 전 절친한 친구 윤영하 소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장면을 구상했다. 그러나 그가 자료 조사차 국립대전현충원에 갔을 때 우연히 마주친 윤 소령 가족은 이를 반대했다. 결국 그 계획은 무산됐다. 홀대받은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은 컸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들은 잊혀졌다. 태풍은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보람도 있었다. 2년 뒤 ‘그 영화를 보고 해사 생도(2학년)가 됐다’는 내용의 e메일 한 통이 왔다. 그 생도는 수업 과제라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해 10월 이런 얘기를 최완 ㈜아이엠픽처스 대표와 나눴다.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영화 제작에 나서게 됐다.
곽 감독은 “그때 얘기만 꺼내면 유족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고 전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아픈 마음은 8년 가까운 세월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천안함 침몰 사건 소식에 그는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다. 그는 한주호 준위의 발인 하루 전날인 3일 빈소를 찾았다. 아들 같은 후배들을 구조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한 준위를 조용히 조문했다. 그는 “빈소에서 제복을 입은 한 준위의 아들(육군 중위)과 UDT 후배들의 절제된 슬픔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고 털어놨다. 다음 날 영결식 때 대원들이 ‘사나이 UDT가’를 부르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지금도 흐르는 바다 사나이의 눈물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니라.” 청마 유치환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운명)’와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숙명)’의 차이일까. 제복을 입은 ‘강철의 사나이’ 한 준위는 피할 수 있는 위험을 끝내 피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악(惡)해지고, 살기 위해 약(弱)해지는 게 인간인데….
불 뿜는 적의 총탄을 받아내고, 고속정이 침몰하는 순간까지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던 ‘아름다운 그들’. 소령 윤영하, 중사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병장 박동혁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참군인의 길을 걸었다. 조국을 위해 붉은 피를 흘리며 짧게 살다 갔다. 지난 세월, 그들은 오랫동안 홀대받았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곽 감독에게 당부한다. 부디 이들의 넋을 위로해 줄 가슴 뭉클한 영화를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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